곧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출산 이후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모든 게 휙 휙 지나간 느낌이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내가 해야 할 새로운 일들이 있어서 그런지 지난 시간들이 무언가로 꽉 들어찼다. 이렇게 보면 일 년이란 시간은 참으로 길다.
6개월 전에 기어 다니던 아이가 지금은 걸어 다닌다. 이제는 제법 작은 인간 같다. 처음에는 가만히 누워있다가, 뒤집어서 혼자 놀다가 무릎으로 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두 허벅지 근육과 배에 힘을 주고 제 두 발로 서서 걷는다. 유모차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지루한지 빨리 내려달라고 투정을 부린다. 이것들이 모두 자기 인생 1년 차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새끼 망아지는 어미의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걷지만 인간이나 짐승이나 자기 새끼가 두 발로 혹은 네 발로 일어선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느끼는 것은 똑같을 것이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순간 자식의 독립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야말로 자립(自立)이다. 스스로 섰을 때부터 자유 의지가 무엇인지 알아가기 시작한다.
허벅지와 같은 대근육만큼 소근육 발달도 빠르게 진행된다. 예전에 분유를 먹을 때 두 손으로 스스로 분유병을 받쳐서 먹는 것도 너무 신기했는데 이제는 자기 손으로 이유식을 먹는다. 받아먹던 아이가 이제 자기 손가락을 젓가락 삼아 밥을 집어 자기 입으로 넣는다. 단순해 보이는 동작 하나하나가 이 친구에게는 인생 처음 해보는 움직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대단하기 그지없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방식도 투박했던 아이가 이제는 그림책도 한 장 한 장 아주 세심하게 잡고 넘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작은 인간이 발달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부모는 자식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세월이 감을 느끼고 또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새로운 시대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정말 놀랄만한 새로운 시대가 딱 하고 나타날까 하는 물음이 든다. 지구에서 일어난 인류의 역사를 시간 순서로 나열했을 때 인류의 역사의 흐름을 바꾼 주요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결국 선형적인 흐름이었다. 나 한 명은 어느 날에 술에 너무 취하면 필름이 끊길 수는 있지만 전지구인이 동시간에 필름이 끊긴 날은 없었으니까, 어떻게든 흐름은 이어졌다. 단편적으로 1년 전의 우리 가정과 지금을 비교하면 가족이 한 명 더 생겼다는 엄청 큰 변화가 있었음은 맞으나 이것을 나와 아내의 삶 전체로 보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고는 볼 수 없다.
두 가지 이유로 그렇게 생각한다. 첫 째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한 생명이 찾아온 것은 우리 부부의 사랑의 결실이었고, 그 결실을 맺은 것은 우리 둘이 함께 사랑으로 그릴 미래를 전제로 부부가 되기 결정했기 때문이며, 부부가 되기 전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깊이 알아갔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계속해서 인과 관계를 찾아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내 삶 속 모든 것의 이유는 출생일 것이다. 내 삶에 갑작스레 주어진 것은 없다고 믿는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두 번째는 우리는 모두 어떤 결과를 바라기 때문이다. 조금 추상적인 개념인데, 우리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으로든 원하고 염원하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면, 그것은 갑자기 일어난 일일까, 아니면 바라던 일이 ‘이제야’ 일어난 것일까? 전자는 말 그대로 갑자기 발생한 것이고 후자는 드디어 발생한 것이다. 사람이라면 무엇인가를 원하고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이 내게 왜 일어났는지 사유가 닿는 곳까지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갑자기 일어난 일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어나도록 원한 것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그냥 이해할 것이다. 내가 원했으니까, 일어날 것으로 믿었으니까, 그게 이유다. Whatever happens, happens.
아이를 키우다 보니 한편으론 삶의 어떤 면들을 수용하게 된다. 살아보니 그렇더라라는 인생 선배들의 말이 조금 이해가 된다. 왜 나이가 들수록 언행이 점잖아지는지, 왜 새로운 것들에 무감각해지는지. 신작 영화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예전만치 않은 내 모습에 놀란다. 신규 앨범보다 2000년 대 노래를 다시 찾아 듣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내 마음이 궁금하다. being relevant 함보다 익숙함을 찾게 되는 이 지금 나의 모습을 나는 수용하려고 노력하고있다. 내 삶을 직시하고 생각의 꼬리를 물(Reasoning) 노력을 할 것이냐에 어른인 우리들의 궁극적인 자립의 모습이 달렸다.
Reasoning을 AI가 잘한다고 해서 우리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항상 ‘왜’가 따라야 한다. 세상을 경험하는 아이들처럼 말이다. 인생의 방정식이 있다면 그것은 ‘나만의 경험’ = ‘나’가 아니라, ‘나만의 경험’ + ‘나만의 믿음’ = ‘나’가 되어야 한다. 경험은 이미 흘러간 나의 왜곡된 기억이고 믿음은 앞으로 내 미래 지도 위에 그려진 북극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AI가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갑자기 우리에게 갑작스레 떡 하고 나타날 미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갑작스러움이라는 말속에 무방비라는 뜻도 숨어있다. 난 AI라는 새로운 컴퓨팅 기술 자원이 우리 삶을 크게 바꿀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준비한다면 어떤 미래가 다가오든 내가 원하는 미래였듯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 생일 축하해 레온.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