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te it or love it

이 세상에 진리만큼 해방감을 주는 것은 없다. 진리는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것에는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이 따르지 않는다.

인생은, 짧게는 상대적이지만 결국엔 절대 평가의 게임이다. 인생은 수많은 100m 단거리와 단 한 번의 마라톤이라 생각한다. 100m는 능력에 올인하지만 마라톤은 정신적인 운동이다.

지금 100m를 뛰어야 한다면 남들보다 빨리 뛰어서 들어오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 평가의 목적은 ‘도달과 속도’에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돌아봤을 때, 학창시절은 매년이 단거리처럼 상대적으로 학업 성취도를 평가했다. 사회에 나가면 내 능력은 다양한 평가 스펙트럼으로 평가된다. 연봉, 회사 네임 벨류, 조직 내 위치, 모아둔 자산, 그리고 가족 여부까지.

반면에 인생의 절대 평가는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절대 평가의 목적은 ‘지향함과 유지함’에 있다. 상대 평가는 도달함에 대한 보상을 받지만 절대 평가는 진행중인 과정 속에 있는 보상이다. 마라톤을 뛴다면 42.195km 동안 멈추지 않겠다는 각오를 되새기며 골인 지점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제일 중요하다. 마라톤은 뛰고 있는 나와 흐르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긴 시간이 주는 고독은 벌이 아니라 축복이다.

상대 평가와 절대 평가 모두 ‘나는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나는 사업을 잘 일구고 있는지’ 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평가 방식을 채택해서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진리에 가까운 답을 찾을지, 다시 상황 속에 표류하게 될지 정해질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인생을 살 때나 사업을 할 때 절대 평가를 기본 방식으로 채택해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착각해오던 것이 있다. Right Time 과 Right Answer 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좋은 시점에 찾아오는 아이디어 말이다. 사업 기회를 모색할 때 상대적인 잣대로 찾다보니, 마치 내가 알맞은 시점에 세상이 필요로 하는 문제점을 풀 최적의 방법을 찾았다고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러지 않았는가, 기술은 계속 바뀌어도 폼은 영원하다고. 세상의 문제를 푼다는 것은 상대평가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된다는 것을 느꼈다. 세상의 문제를 단 번에 풀 수 있는 해결책은 거의 없다. 사람이라는 변수와 시간이라는 상수가 있기 때문이다. Jay Z가 말했다, ‘You only have to be right once.’

사업에는 시간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시간은 세상의 절대 규칙이다. 내가 이 규칙을 내 게임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 없다면 시작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중요한 인생의 결정을 내릴 때 내가 이것을 지속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 상황의 조건이 바뀌고 제약이 생겨도 지속할 수 있느냐에 대해 YES라는 답이 나오면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결정에 대해 세상의 상대적인 평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성취감을 주는 인생을 사는 법이 아닐까. 이것이 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Joys of being wrong. Joys of being misunderstood.”


*아래는 Same as Ever 책에서 저자가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

Q1. 맞는 말을 하고 있지만 스토리텔링이 형편없어서 내가 귀 기울이지 않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A1. 예전에는 엄마의 잔소리가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15년을 넘게 듣다보니 어느새 체화되어있다.

Q2. 현재 내가 가진 견해 중 만일 다른 나라에 태어났거나 다른 세대에 속했다면 동의하지 않을 만한 것이 있는가?

A2. 신기술이 나와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 수 있다.

Q3. 사실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서, 분명 사실이 아님에도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무엇인가?

A3. 나는 남들에 비해 잘 안 늙는다는 것.

Q4. 결국에는 나도 겪게 될 문제인데 다른 나라, 다른 업계, 다른 직종에만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A4. 굳이 필요 없는 애매한 인력이 될 수 있다는 것.

Q5. 내가 진실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영리한 마케팅의 결과에 불과한 것은 무엇인가?

A5. 아메리칸 드림.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

Q6.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해서 무지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나 문제는 무엇인가?

A6. 지금 삶 자체에 만족해서 욕심이 없는 사람.

Q7. 오래 못 갈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새로운 트렌드에 해당하는 현상은 무엇인가?

A7. AI가 인간들을 대신해서 소액 결제를 해주는 세상.

Q8. 똑똑해 보이지만 사실은 헛소리만 하는 허풍쟁이는 누구인가?

A8. 많은 교수들과 정치인들.

Q9. 나는 상상하지 못한 리스크에 제대로 대응할 준비가 돼있는가?

A9. 순간 대응은 어려울 수 있지만 결국 적응하지 않을까.

Q10. 만일 나의 인센티브가 달라진다면 현재 나의 견해 중 어떤 것이 바뀔까?

A10. 지금 상황은 매우 불충분하다는 것.

Q11. 현재 우리가 간과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너무나 명백하거나 당연해질 현상이나 문제는 무엇인가?

A11. 일상 속에서 외국인 이웃들과 가깝게 사는 것.

Q12. 일어나기 직전까지 갔지만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하지만 만일 일어났다면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을 사건은 무엇인가?

A12. 연평도 포격 사건.

Q13. 나의 통제 바깥에 있는 요소나 힘이 내가 인정받은 성과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A13. 생각보다 많이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거의 80%? 성과란 운좋게 남이 봐주고 인정해줘야 성과가 된다.

Q14. 내가 인내심이 있는 것인지 고집을 부리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A14. 구분하는 것이 꼭 필요한가? 어다르고 아다를뿐 선택은 선택.

Q15. 나는 진짜 모습은 형편없는 누군가를 존경하고 있지는 않은가?

A15. 생각보다 그래왔을 수 있다. 그래서 멘토를 두되 인간적인 멘토를 두려고 노력한다.

Q16. 성공을 위해 꼭 치러야 하는 비용임에도 불편함이나 골칫거리, 성가신 문제를 없애려고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A16. 맞다. 정공법이 단순하지만 가장 마음 편한 해결법이다.

Q17. 내가 닮고 싶어 하는 미친 천재가 사실은 그저 미치광이에 불과하지는 않은가?

A17. 미치광이면 어떤가? 나도 차라리 오해를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Q18. 내가 지닌 확고한 신념이나 견해 중 앞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은 것은 무엇인가?

A18.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가족과 자식 교육 관련한 것이 될 것 같다.

Q19. 지금껏 늘 옳았던 것은 무엇인가?

A19. 내 자신을 믿은 것.

Q20.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A20. 부모님의 자식 사랑.

fin.

계약 세계

인터넷이 유통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면 AI는 창작의 민주화를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내 아이디어를 공짜로 알릴 수 있게 된만큼 AI 덕분에 우리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약 5년 전 코로나 시기, IT업계에 개발자 채용붐이 불었다. 판교역의 모든 출구에는 개발자 구인 광고가 모든 광고판을 차지했을 정도였다. 이때만해도 개발은 아직도 사람이 사람에게 배워야하는 스파르타 코딩 클럽이나 코드스테이츠, 멋쟁이사자처럼, 패스트캠퍼스와 같은 곳에 사람과 돈이 몰렸다. 나도 이때 파이썬을 돈을 주고 수강했다. 지금은 파이썬 한 줄도 쓰지 못 한다. 그대신 Cursor나 Replit은 쓸 줄 안다.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 학습에 달려드는 이유는 생존이 달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취업준비생들에게는 하나의 서브 스킬(skill)을 장착하는 것일 수 있고, 새로운 포지션이나 다른 업종으로의 이직을 통해 더 나은 커리어를 꿈꾸기 위함일 것이다. 단순히 무료하거나 욕심 없는 취미 정도로 코딩을 새로 배우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생성형 AI를 통해 사실상 모든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갓 2년만에 가능해진 것이다. AI는 창작의 민주화를 넘어 학습의 민주화도 이루어냈다. 얼마나 더 아느냐가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알 필요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네가 그것을 알게된 사실이 이제는 더이상 너를 남과 차별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고졸이 서울대 학생보다 전공 분야를 더 많이, 원한다면 더 깊게 알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지식 수준 자체는 더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게다가 인터넷과 AI가 결합하니 특정 정보를 획득하는 것에도 차별을 두기 어려워졌다. 전문성을 통해 감춰왔던, 그리고 전문가들의 네트워크에서만 돌던 정보들은 이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수천분의 1초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트레이딩은 아직 속도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세상 왠만한 정보는 이제 말그대로 공개된 정보다.

그렇다면 정보 자체가 가진 가치는 줄어들었다는 말인가? 정보의 속도나 깊이, 그리고 그 민감한 뉘앙스까지 대중이 접근 가능하게 되었다면, 이제는 그럼 정보와 지식 자체가 경쟁력이었던 것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금까지 지식노동자라고 불리웠던 많은 직군들은 어떻게 될까?

아이디어 자체도 초상향 평준화가 된 지금, 이제부터 경쟁력은 어디서 생기게 될까?

인터넷의 이메일 프로토콜은 편지를 보내는 대상을 이메일을 통해 전세계인으로 확대시켰다. 인터넷 시대에는 작은 아이디어가 전세계의 수요를 캡쳐할 수 있는 지식+경제 유통망을 디지털로 깔아줬다. 인터넷 시대는 다른 말로 글로벌 시대였고, 전세계를 상대로 교역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아이디어와 그것을 잘 퍼뜨리는 마케팅이 중요한 경쟁력이었다.

인터넷 인프라 위에 올라간 AI의 시대에는 자동화가 추가된다. 인터넷으로 초연결된 세계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중 대부분의 일들을 인공 지능에 위임하고 있다. 리서치부터 코딩, 계산 등 귀찮았거나 시간 소모적인 일들이 먼저 자동화될 것이다. 그럼 이때는 자동화를 하는 능력이 경쟁력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생략하거나 간소화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화를 파는 것이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하던 일들의 일부를 자동화하기 시작한다면, 순식간에 많은 일들이 엄청난 속도로 해결되거나 진행될 것이다. 기존에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하게 되면 시간을 포함한 다양한 물리적 제약을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생산성은 급진적으로 좋아질 수 있다. 다만, 이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않든 우리가 이해할 수준을 넘을 정도로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이 조금씩 더 많은 부분을 자동화시킬수록 파장을 일으키듯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든 것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그럼 점점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생길 것이다. 또, 시간이 빠르게 간다고 느낄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더 조급해지고 인내심이 줄어들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자기들이 내려야 하는 결정들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대응할 것이다. 생활에 있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행위들이 계약을 기반으로 자동으로 운영될 것이며, 그만큼 계약에서 자유로운 것들과 관계들이 과거보다 더 큰 가치를 인정받고 수요가 몰릴 것이다.

이것이 내가 가진 전망이다. 여전히 지식은 중요하다. 많이 아는 것이 더이상 의미를 잃었다는 뜻은 안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는 것에서 멈추면 의미가 없다. 그것을 어떻게 이 세상에 응용할 것인지, 접목할 것인지에서 차별점을 만들 것이다. 물론 AI가 훌륭한 ‘HOW’를 알려줄 수 있지만, 특이점이 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그 방법을 어떻게 세상의 흐름에 태울지는 아직 인간의 몫이라 생각한다.

fin.

This game called Life

김태엽, 『사모펀드 투자와 경영의 비밀』 을 읽고.

세상에서 진짜 무서운 사람은 자기가 똑똑한줄 모르고 그냥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여기에 뚝심까지 있다면 그 사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 대해 느꼈던 생각이다. 운이 좋다면 살다가 간혹 이런 부류의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 적당히 잘해야 질투심도 나고 오기도 생기지, 이런 사람이 가진 work ethic을 보면, 마치 죄를 지은 후 성경을 읽을 때 느낄 것 같은 회개심을 느낀다.

그래도 난 이런 사람들이 좋다. 이런 사람들과 가능한 최대한 가까이 붙어 있고 싶다. 그 이유는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그냥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명석한 사람이 한 곳에서 오랫동안 최고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만화의 주인공을 보듯 응원하고 싶어진다.

내가 가진 달란트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끝장을 보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본다. 누구든지 처음 하는 일은 어리숙하다. 남의 떡이 커보일 수 있다.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조급함이 고개를 들면 지금 가고 있는 길에서 눈을 돌려 빨라 보이고 쉬워 보이는 길을 찾게 된다. 내가 지금 발을 디딘 길이 험난할 경우 안전해 보이는 길을 기웃거릴 수 있다. 불안함, 조급함, 일상의 불만족(일상 속 감사함이 줄어듬), 상대적인 비교, 선민 의식, 편리한 현실 타협, 자기 연민 등등. 나열하고 보니 핑계 거리를 무한히 만들 수 있겠다.

그만큼 내 전문 분야를 만들고 그 안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동시에 rewarding한지 다시금 마음으로 받아들여본다. 얼마나 나 스스로를 믿어야 할지, 또 얼마나 스스로에게 기대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루 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뭐라도 되겠다는 배짱과 포부라 생각한다. 배짱과 포부는 다른 말로 하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마치 내가 믿는 신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무신론자에게 설명하기 불가능한 것처럼, 난 그것을 믿기에 굳이 남에게 내 신앙을 인정 받을 필요 없는 것이다. 자기 능력을 마음 깊이 신뢰하는 것 하나로 본능적이고 야성적인 결단들을 내리는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노빠꾸’이고, 내가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료들에게 말하는 ‘못 먹어도 Go’다.

인생 자체가 게임이라면, 나는 얼마의 판돈을 가지고 들어갈 것인가. 잃어도 그만인 돈을 가지고 카지노를 어슬렁 거릴 것인가. 아니면 한 번 사는 인생, 세상 한 곳에 자리 잡고 내 삶을 피워볼 것인가. 내가 지난달 싱가폴에 출장을 갔을 때 일정을 마치고 마리나베이샌즈 카지노에 들른 적이 있다. 내 생전 첫 카지노였는데, 20만 원 정도를 칩으로 환전했다. 내가 블랙잭은 조금 할 줄 알아서 배팅 금액이 가장 낮은 테이블에 앉아 몇 판을 했다. 초심자의 운을 믿고 이 돈으로 2배를 불리는 욕심을 냈다. 나는 블랙잭 자체를 즐기기보다 저 딜러를 이겨야겠다는 욕망에 휩싸였다. 나는 카드를 카운팅하는 것은 커녕 블랙잭 게임의 기본 승리 확률도 모르는 상태로 게임을 했다보니 어찌 보면 모든 것을 운에 맡긴 것과 다름 없었다. 결국 헐레벌떡 70달러를 땄지만, 게임을 즐기지는 못 했던 것 같다.

반대로 나와 함께 간 사람은 나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칩으로 환전해서, 어차피 잃을 돈이니 제대로 배우고 즐기겠다는 태도로 블랙잭을 했다. 한 게임 하고 챗GPT로 자기의 플레이를 복기하고, 잘하는 사람의 어깨 너머로 플레이를 지켜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베팅하는 것을 반복했다. 조금 잃기도 했지만 결국 최신 아이폰 하나 살 정도의 돈을 벌었다. 이것을 보고 느꼈다. 자기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도전하는 것과 카지노에서 베팅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결국 중요한 것은, 이 게임을 최대한 길게 즐길 수 있으면서 자기가 세운 규칙에 맞게 배팅하는 것이었다. 그 마인드, 그 태도, 그 결단력 덕분에 그가 처음 가지고 온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따고 카지노를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원히 멈출 수 없는 고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내 배짱으로 나만의 답을 만들어본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배팅 전략은 무엇인가.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