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릴을 사는 사람이 생각하는 단 하나는 바로 ‘뚫고 싶은 구멍’이다. 도구의 쓰임새는 문제를 해결함에 있는데 나는 요즘 이 단순한 진리를 잊고 신다. 이 세상 모든 도구의 존재는 목적 지향적이어야 한다.
내 일에 AI를 도입하기 위해 4월 한 달 AI와 씨름하며 보냈다. AI를 쓰면 쓸수록 미궁에 빠졌다. 왜 내가 원하는대로 알잘딱깔센을 안 해줄까. 내가 덕이 부족한가? 솔직히 말을 못 알아 쳐먹는 컴퓨터에 욕도 많이 썼다. 아직 이 도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감을 잘 못 잡고 있다.
자연어를 처리하는 LLM 덕분에 컴퓨터와 대화하듯 코딩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어를 이해하는 추상화 레이어가 있을뿐 컴퓨터를 조작하고 프로그래밍을 하는 본질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AI가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답변을 내고 있다고해서 내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되지 않는다. 이 도구를 제대로 쓰려면 이 컴퓨팅 파워를 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이용할 것이냐의 질문이다.
우리 회사는 전직원에게 적극적으로 AI 사용을 장려하고있다. 클로드 팀 플랜을 제공하면서 토큰이 부족한 직원들에게는 상위 seat도 줄 정도로 적극적이다. 심지어 회사 미션도 새로 제창했다, ‘10x’. AI로 10배 하기. 멋진 목표에 질문이 뒤따른다. 10배란 무슨 10배를 말하는 것일까? 10배의 속도라면 무슨 속도? 10배의 양(volume)이라면 무슨 양? 10배의 질(quality)이라면 어떤 퀄리티? 결국 일을 10배 빠르고 10배 많이 하라는 것일텐데, 이 10배 벡터 값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는 각자의 몫으로 주어졌다. 조금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시중에 제일 좋은 총과 탄약을 사주고 10배치의 결과물을 가져오라는 것이다.
AI가 누구나 10배의 상태로 증강시킬 수 있는 도구이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회사에는 아직도 AI 사용을 챗지피티와 대화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이고 심지어 클로드를 다운 받으려고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첫 번째로 뜨는 검색 광고의 짝퉁 클로드에 가입한 분도 있었다. 그니까 ‘AI를 쓰라’는 말은 추상적이고 반직관적이다. ‘일자 도라이버를 써라’ 처럼 모두에게 같은 의미와 목적으로 정의되는 만능형 도구가 아니다.
현재 나는 클로드 코드에 옵시디언을 통한 로컬 데이터베이스를 결합하여 내 워크플로우를 증강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AI를 사용하기 전의 업무 방식이 2차원이었다면 클로드를 비롯한 AI 도구들을 사용하면 3차원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겠다고 100% 믿는다. AI-Augmented Reality다. 그래서 나에게 AI는 ‘갓 포장지를 뜯은 루빅스 큐브’, 이자 ‘긁지 않은 복권’이다.
‘Shiny Object Syndrome’
새롭게 나온 트렌드나 도구, 기술 등을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집착하고 추종하는 상태를 말한다. 어찌보면 FOMO의 한 종류라고도 볼 수 있다. 딱 AI가 반짝반짝 빛나는 무언가다. 하루가 멀다 하고 파운데이션 LLM 회사들은 새로운 기술을 발표하고, 깃허브엔 핫한 AI 관련 repo가 올라오고, SNS에선테크 인플루언서들이 새로운 방법론들을 떠들며 FOMO를 조장한다. 진짜 무서운건 이게 허울뿐인 하입(hype)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파급력이 있는 것들이 매일 새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파괴적인 혁신을 목도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이상할 수 있다.
근데 이 노이즈 속에서도 점점 분명해지는 소리가 있다, ‘네가 풀려고 하는 문제가 무엇이냐?’ 다. 내가 풀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심사숙고하여 정의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문제란 무엇이며 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더 나아가 그것이 왜 내가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하는지가 첫 번째다. 그 다음엔 AI라는 것이 어떤 도구인줄 알고 있느냐이다. 나는 이 도구에 대해 얼마나 알아야 하는지가 두 번째다. 이 두 개의 어려운 질문들을 스스로 만족할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답을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AI를 쓰기 위해 AI를 쓰다가 내가 애초에 왜 AI를 쓰기로 결정했는지 방향성을 잃고 AI에게 화풀이만 하다가 중요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제와 도구의 각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세상엔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도구가 드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구멍의 크기나 깊이 등에 따라 써야하는 도구도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내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뚫어야 할 구멍을 제대로 알면 사람들이 밖에 나가 철물점을 들락거릴때 나는 집에 있는 쇠젓가락으로 일을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는 회사들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도구’를 제공하는 곳들이다. 이제 우리는 AI를 통해 누구든지 가장 적합한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이제 ‘문제’를 정의하면 된다.
AI는 나를 즐겁고도 불안하게 만드는 익사이팅한 도구다. 그래서 한 발 물러나서 이 반짝거리는 것을 잘 관찰하고 공부해보려 한다.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를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서 작성하고 AI라는 도구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하면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