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b&Wretle

세상이 내 관심을 듣는다

“You are whom you follow.”

Bruce W. Lee

옛말에 머습살이도 하려면 대감집에서 하라는 말이 있다. 어차피 누가 시킨 일 하는 것이 똑같다면 대감집처럼 조금이라도 배운 분, 조금이라도 으리으리한 곳에서 운신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서당에서 주는 밥을 먹는 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듯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배울게 더 많은 곳이라면 거길 선택하는게 상책이다, 아무나 들어가기 힘들어서 그렇지.

국내 대기업들이 약속한만큼 신입들을 뽑지 않고 있다. 대기업 공채가 많이 줄어드니 들어가는 사람도 적다. 반대급부로 현직원, 전직원들은 바늘구멍을 통과했던 실력 있는 사람처럼 자연스레 동경의 시선을 받게 된다. 우리 시절(?) 공채의 문이 지금처럼 좁지는 않았어도 구직자에게 우린 한없이 높아만 보일 것이다. 머슴될 사람이 머슴을 부러워하는 그림이다.

일에 대한 패러다임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직장에 대한 패러다임이 온다. 일이란 돈벌이 수단으로써 1차원적 행위이고, 그 일을 함으로써 나를 표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2차원적 행위, 그리고 세상과 내가 어떻게 연결되어 가치를 교환하느냐가 일의 3차원적 정의라 생각한다.

일이란 것을 아무나 할 수 없는 시절에 직장이 사람에게 일을 주었다. 직장에 대한 첫 패러다임은 고용 안정(job security)이었다. 직장이 일꾼들이 각 가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생계를 책임져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자르지 못 하면서 좋은 사원 복지에 높은 임금을 주는 직장이 최고의 직장이다. 우리가 구글, 애플, 삼성, SK 등 굴지의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대감집 머슴살이의 호사스러움을 느끼고 싶어서일까?

우리는 부러운 사람의 소식과 그들이 하는 말에 우선 귀를 기울여본다. 나보다 나은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은 그만큼 강력한 followership을 만든다. 닮고 싶은 사람에게 관심을 더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그렇다고 그 말을 믿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맹목적인 추종은 나약한 행위이고, 복수의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을 일시적으로라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난 오늘도 내 존재를 모르는 누구에게 내 관심과 시간을 공짜로 주었을까?

이 세상은 내가 원하면 누구든지 팔로우하고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내 관심을 희소한 화폐처럼 쓸 수 있는 세상이다. 누구를 팔로우하냐 그 자체가 나를 표현하고 발전시키는 행위가 되었고, 내가 세상에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전 세계에 4만 명이 넘는 백만 유튜버들이 있다는 말은 우리의 관심은 점점 더 세분화되고 평등해지고 있다.

동질화의 욕구든 막연한 동경이든 지금 시대상은 ‘you are whom you follow’ 다. 어제와 오늘의 일자리 패러다임이 다르고,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도 세분화되고 평등해졌다. 이제야말로 내 관심에 맞게 나를 어떻게 세팅할지에 따라 나와 세상과의 역학관계가 정해질 것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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