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게이션 맨(Navigation Man)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는가?”

Bruce W. Lee

화학 공학을 전공하신 아빠는 화학 회사에서 기업 영업을 하는 세일즈맨이었다. 대전에 본사가 있었고 자가용을 타고 전국을 다니며 신규 거래처를 뚫거나 기존 거래선을 지키는 일을 하셨다. 그때는 도로들도 지금처럼 잘 구비되었을 때도 아니었거니와 네비게이션이란게 없었을 때다. 그래서 차 조수석 서랍에 두꺼운 전국 지도책을 가지고 다니시면서 운전 중간 중간 보면서 목적지를 찾아 가셨다. 이때 체득하신 위치 감각과 운행 감각 덕분에 아빠에겐 일종의 ’네비 없이도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부심’이 생겼다.

그래서 아빠는 지금도 길을 잘 외우시고 곧 잘 가신다. 반면에 나는 더 젊고 머리가 빨리 도는데도 네비가 없으면 선뜻 출발하기가 꺼려진다. 자신이 없어진다. 네비게이션 없이 중거리 운전도 어려워진 나는 퇴보한 것인가? 내가 목적지를 찾아 가는 느낌보다 네비게이션이 나를 목적지로 옮겨놓는 느낌이다.


옛날 옛적의 인간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어딜 가기 좋아했음이 분명하다. 자연스레 미지의 세계를 궁금해했고, 모험에서 돌아온 용감한 여행가들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 빠져들었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자기 위치를 파악한 방법은 밤하늘의 별들과 지형 지물을 이용하는 것이 최초였다. 폴리네시아인들은 특정 시기마다 밤 하늘에 나타나는 별들과 바다 물결의 방향을 보고 태평양을 이동하였다. 패턴처럼 반복하는 자연 현상을 내 위치 파악의 레퍼런스로 삼은 것이다.

가장 오래된 금속 컴패스가 발견된 시절은 기원전 2세기경 중국이다. 한나라 시절에 발명된 이 ‘남쪽을 가리키는 숫가락’은 자성을 가진 자철석이라는 광석으로 만들어졌다. 지구 자기장을 따라 움직이는 이 컴패스 덕분에 중국인 모험가들은 기본 방향을 확인하면서 여행할 수 있었다. 이 작은 컴패스는 모험가들로 하여금 이제 해안선이 시야에서 멀어져도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항해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 주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기구가 헤아릴 수 없이 큰 세상을 보게 만들어준 것이다.

네비게이션(Navigation)은 ‘항해‘라는 뜻이다. 바다는 미지(unknown) 그 자체다. 쉬이 만족될 수 없는 호기심, 강렬히 타오르는 모험심, 그리고 실행에 옮기는 용기의 원천은 바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에서 시작했다. 돌아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이제 사람마다 감수할 수 있는 위험 수준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여러 훌륭한 모험가들의 업적들이 만들어졌다.

탐험은 미지의 세계와 내가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끊임 없는 학습과 적응이 따르며, 배움에는 교류와 발전을 의미한다. 새로운 가치가 생겨나고 희생을 자연스레 수반했다.

우리 일상에 네비게이션 기술이 쓰이게 된 것은 GPS 덕분이다. 이 기술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1950년~60년대 냉전 시대 미국과 러시아의 총성 없는 과학전이 있었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호 발사 성공이 도화선이 되어 두 나라는 위성 쏘기 경쟁에 들어갔다. 이때 위성의 제1의 용도는 군사 작전에 활용되는 것이었다. 적의 위치를 확인하여 타격하기 위해 위성 신호로 X-Y 좌표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과학자들이 인공위성을 이용해 여러 실험을 거듭하다가 민간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많은 응용 기술 컨셉을 만들었고, 그중 하나가 GPS다.

GPS는 지구 궤도를 일정하게 도는 위성들, 지상 통제소, 그리고 신호 수신기가 기본이 된다. 신호를 쏘는 위성의 위치 정보를 지상에 있는 수신기가 읽는데, 최소 4개의 위성이 보내는 정보를 받아야 3변 측량술(Trilateration)을 이용해 타겟의 3차원 위치 정보(위도, 경도, 고도)로 읽어낼 수 있다.

GPS 기술은 세상을 바꿨다. 차로 이동할 때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비행기의 항로 계산부터 응급 출동, 실종자 구조, 글로벌 공급망 구축, 지구의 지질 움직임, 농업 등 인간 생활에서 안 쓰이는 곳이 없을 정도다. 다시 말 해 사람을 옮기거나, 물건을 옮기거나, 돈을 옮기거나, 데이터를 옮길 때 위치 기반 기술 컨셉이 적용된다.

탐험의 욕구에서 시작한 네비게이션 기술은 이제 상호 연결로 그 목적성이 확장되었다. 그럼에도 그 핵심은 인간의 호기심과 모험 본능에 있을 것이다. 귀소 본능보다 크고 강한 것이 때로 울컥하는 떠나고 싶은 욕구 아닐까?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시대다. 이미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세계 지도가 내 손바닥 안에 있기 때문에 안 갈 이유는 있어도 못 갈 이유는 이제 사라졌다.

우리 인간은 그동안 변함없이 운행하는 대자연에 의지하여 살았다. 자연 현상에 기초하여 자기 위치를 알 수 있었지만 아직 오차가 너무 컸다. 그 말은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생존 리스크가 컸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자성을 통해 동-서-남-북을 알게 된 이후 인간의 자신감은 높아졌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자기 위치를 미터 단위로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세상이 내 발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초창기의 네비게이션은 우리가 목적지 밥로 앞까지 왔음지만 결국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어서 다 와놓고 못 찾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얼마나 역설적인가! 다 왔는데 못 왔다니, 상대적인 방향과 위치는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목적지에 당도하지 못 함에서 오는 그 답답함이란!

나는 조그만 네비게이션 화면 정중앙의 화살표로만 존재한다. 나는 화면 중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내 주변 모습만 움직인다. 하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나이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진정한 이동이란 뭘까 생각한다. 기계가 시키는대로 왼쪽, 오른쪽으로 핸들만 돌리는 지금의 우리에게 ‘주도적인 이동’이란 무엇일까.

위치란 것은 객관적이면서 상대성을 갖는다. 옛날엔 내가 아는 곳에서 얼마나 멀리 나왔는지 아는 것이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중요했다. 현대에 와서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같은 질문을 해야한다. 지금 나는 어디서 시작해서 얼마나 멀리 왔는가? 네비게이션의 화면처럼 이미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나는 상대적으로 어디쯤에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내게 무슨 의미인지 묻는 것이다. 세상에 비춘 나의 객관적인 위치만큼 중요한 것은 상대적인 내 위치를 내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가 진짜 질문이다.

fin.

알 수 없음의 아바타

글쓴이: Bruce Wayne Lee

Hi, Yo soy Bruce Wayne Lee. I'm Korean and also go by the name of 李俊雨. Hope you find something interesting here and hope to run into you in the near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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