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약) 우리나라는 누구나 의사 처방전만 가지고 약을 타기 정말 쉬운 나라다. 나도 고등학교 다닐때 야자를 빼기 위해 정형외과에서 가라 처방을 받고 잠시 허리 디스크 환자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느끼는 증상만 말해준다면 그 증상을 보이는 여러 병명중 취사 선택하여 진단 받을 수 있다.
성인 ADHD) 친구의 집들이에서 나온 대화중 요즘 성인 주의력 결핍증(ADHD)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가지에 오래 몰입하지 못 하고 금방 산만해지고 핸드폰을 찾는다는 것이다. 오, 너도? 나도! 이러다가 우리 ADHD인가보다 까지 나왔다. 근데 잠깐, 나는 내가 ADHD 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MBTI) T발 너 C지? 밈 진짜 웃기다. MBTI에서 T와 F의 차이를 ‘정확히’ 구별하는 법이라는 글들이 인터넷에 진짜 많은데, 내 유전자에 T나 F가 있다면 모를까, 어떻게 누구든지 돌팔이 진단을 내리고 있는 이 시대에 웃음이 난다. 역시 무언가에 대한 비판/비평을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art form은 개그다.
MBTI로 사람의 공감 능력과 정서 지능을 빠르게 진단 내리는 세상은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단편적인 몇 가지 행동 증거로 타인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알파벳으로 라벨링을 하는 것에 대해서 조용한 저항 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16가지 스펙트럼 안에 갇힐 수 없다.
살면서 겪은 경험들과 그때 느낀 감정들이 쌓이면 어떤 가치 판단을 내려야 할 때 그것들을 사용한다.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하는 이 방식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결정 대신 내 시간 투자와 감정 소모를 최소로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각자도생을 통해 얻어진 휴리스틱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요목 조목 뜯어 보려는 노력은 귀찮고 힘 들고 신경이 쓰이는 작업이다. 그래서 브랜드 이름만으로 상품 퀄리티를 일단 짐작하거나, 내가 팔로우 하는 푸드 파이터가 먹고 있는 음식은 더 맛있을 것 같은 것도 사회적 증거, 혹은 휴리스틱의 단면이다.
빠른 인터넷, 숏폼 컨텐츠, ㅁㅁ클럽 과 같은 느슨한 사회적 모임, 카톡방 조용히 나가기 기능 등이 모두 가리키는 방향이 어디일까? 이 시대의 새로운 생존법이라 생각한다. 잘 맞을 것 같은지 미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 불편할 것 같으면 미리 피하고 싶은 마음. 스스로 최대한 옳고 안전한 결정들만 내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판단이 쉬워진만큼 다름을 이해하려는 근육은 약해지고 있다.
쉬운 진단의 결과는 가볍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엄마는 나를 강제로 속독 학원에 보냈다. 그 선생은 내가 귀신 들린 사람마냥 나를 교정하듯 글을 빨리 읽게 강제했다. 난 여러번 그 학원에서 도망쳐 나왔고 한동안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 어려운 난독증세를 겪었다.
의사의 부주의와 태만으로 어릴 때 자폐성 진단을 받은 아이는 커서도 자신의 안 좋은 상황의 이유를 그 진단 결과에서 찾으려 할 수 있다. 쉬운 진단을 이래서 무섭다, 진단 결과가 결과적으로 맞았든 틀렸든, 우선 그 근거를 나쁜 것으로 보고 교정하려고 하거나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살다보면 골반과 척추가 조금씩 틀어진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을 척추 측만증과 골반 불균형으로 장애인 취급하면 기분이 안 좋을 것이다. 내 얼굴도 비대칭인데 잘만 산다. 본래 우린 강하다. 그런 증상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런 현상을 목격한다고 쉽게 진단을 내리기보다 위험한 결정이 아닌 이상 스스로 이해하려고 해보자.
쉬운 진단의 시대를 이기는 방법은 우리 모두 스스로 회복할 힘이 있는 사람임을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