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치른 국가 자격 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3개월은 준비를 해야 합격 점수를 노릴 수 있는 시험이라는데 나에겐 한 달 정도의 준비 시간이 있었고, 하루 평균 5~6시간을 책상에서 보냈다. 처음 공부하는 분야인데다가 분량이 많았기 때문에, 빠르게 이론 먼저 쓱 훑은 다음 닥치고 모의고사만 주구장창 사서 풀면서 오답 정리를 하는 것을 필승 전략으로 정했다.
시험 당일날 시험장에 도착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도전은 플랜B에도 없던 내가 어찌 저찌 이렇게 시험 볼 준비를 마쳤구나. 약 한 달동안 여기에 쏟은 시간이 대충 200시간이 좀 넘었다. 200시간을 써야 비로소 내가 공부하는 대상의 윤곽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200시간을 써야 비로소 내가 정복하고자 하는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수준인 것이다. 그니까 200시간은 시험 합격을 위해 최소한의 조건인 것이다.
내 200시간 안에는 수많은 작은 이야기가 있는데, 유혹을 참은 나, 게으른 목소리를 무시한 나, 낙담한 나 등이 있다. 이것을 딱 50번 반복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티핑 포인트, 1만 시간을 충족하게 된다. 그러니까, 아무도 축적된 시간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내 1만 시간을 복제하거나 따라할 수 없다.
답은 내 첫 200시간을 채우는 것이다. 쉬워보이지만 아니었다는 걸 아는 순간이 진짜 시작이다.
Red Car Theory
내가 빨간 차를 사겠다는 생각을 가진 순간부터 내 눈엔 도로에 빨간 차들만 들어온다는 말이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말이다. 우리의 뇌는 정말 엄청난 능력을 가졌다. 나만의 세계는 내 관심에 따라 재편된다. 우리의 뇌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눈을 트게 해준다. 그래서 나도 나만의 빨간 페라리를 찾고 있다.
남의 빨간 차엔 관심 없다.
Why play safe?
남의 관심에 신경을 끄고부터 하루 하루가 엄청 단순해졌다. 고독함과 고립감을 느낀다면 내가 나만의 페라리를 찾는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다. 그렇게 나의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주변과 점점 멀어진다. 그럴수록 더 분명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남을 위한 일에 몰두하지 않기로 하자. 왜 남의 삶과 닮으려고 노력하는가? 왜 남을 흡족하게 할 것들을 찾는가? 결국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각자의 본능대로 취할 것은 취하자. 착하게 앉아 있는다고 먹을게 입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먼저 내 이빨로 물어야 할 때가 있다. So why play safe?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