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과 경쟁하세요?

호주 한달살이의 후유증이 지속된다. 지난주 한국에 돌아와서 기침 감기로 한동안 고생을 좀 했다. 인천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두꺼운 옷을 껴입었지만 썰렁한 공기가 가슴에 차는게 심상치 않았는데, 결국 복귀 신고식을 호되게 치렀다.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3월의 한국 날씨가 더 시리게 느껴진 것은, 내가 남반구에서 느꼈던 햇살과 공기에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을 거쳤기 때문일 것이다.

우연히 예전 직장 상사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저는 한 달간 호주 멜버른과 시드니에서 살다가 지난 주에 돌아왔습니다. 한국은 많이 춥네요, 원래 이렇게 추웠죠? 제 피부로 느끼는 기온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온도 말씀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호주 좋죠, 땅만 파먹고 살아도 잘 사는 나라잖아요. 걱정이 뭐가 있겠어요, 1년 내내 따뜻한 날씨 속에서. 한국에 사는 우리들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과 경쟁할 뿐이죠.”

안 보이는 것들과 경쟁하는 나라, 누구보다는 잘 살기 위해 뭔가라도 가지려고 버둥거리며 사는 곳.

같은 날, 저녁 모임에서 비슷한 결의 이야기가 나왔다. 초등학교도 가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서로 자기가 쓰는 과외 선생님 정보도 함부로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학군, 동네,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이웃 엄마들의 대화에서 경제적 능력과 직업을 확인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 속 경쟁 심리는 부모들의 입 속만 바짝바짝 마르게 하는게 아니라 자식들에게 더 가혹하고 메마른 조건들을 만들고 있다. “엄마, 나도 ㅇㅇ랑 같은 학원 다니고 싶어요. ㅇㅇ야, 미안하지만 현실적으로 ㅇㅇ와 같은 수업을 들을 방법이 없단다.” 돈이 많은 집이든 적게 가진 집이든, 다음 세대에게 밝은 미래 대신 스포트라이트가 번쩍거려 낮과 밤 분간이 안되는 콜로세움 경기장을 만들어주고 있다.

누군가보다 앞서거나 이기려는 조바심. 뭔지 모르겠고 계속 승부를 보는 마음가짐. 절대 가만 둬선 안 되는 또래에 뒤쳐진다는 느낌.

그래서 이제 우리는 서로를 잡아먹는다. 인간 먹이 사슬 속에 갇혀버린 사람들은 서로를 착취하는 제로섬 게임을 한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결국 피 혹은 눈물을 봐야 끝나는 게임.

최근 들어 약자로 벌어먹는 사람들을 만난다. 나는 이 부류의 인간을 가장 하등한 인간으로 보고 상종하지 않는다. 나이가 훨씬 어려서, 갓 입사해서, 갓 배우기 시작해서, 순하거나 희생할 줄 알아서 약자처럼 취급한다. 누구나 약자였던 때가 있고, 때로 낮은 자리에 있게 된다. 나는 상대적 약자를 이용해서 사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을 혐오한다. 동방예의지국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우린 이웃에 대한 존중이나 예의 범절대신 즉각적인 우월감을 선택한다.

이제 집에 간다. 집 가는 길 신호를 기다리는 중 옆에 포르쉐가 스윽 선다. 아무리 요새 거리에 고급차가 많아졌다해도 포르쉐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이런게 바로 예술에 근접한 공산품이지, 하며 창문 너머로 몰래 감상하던 중 신호가 초록불로 바뀐다. 그리자 울려 퍼지는 클락션 소리. 멋진 차에 비해 경솔하기 그지없는 클락션 소리 삥!삥! 1초도 앞 차를 기다려줄 마음이 없는 주인 덕분에 그 차는 그냥 멋 없이 거슬리는 차로 전락해버렸다.

난 이것들이 모두 나 하나의 걱정에 그쳤으면 한다. 다만, 긴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맡은 공기 안에는 많은 것들이 녹아 있었다. 나 또한 ‘잘 살아야지, 더 많이 벌어야지’ 같은 생각을 숨 쉬듯 해왔다. 나도 모르게 이런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과 경쟁하기 위해 나를 잡아먹듯 살고 있다. 누가 잡아먹혀야 끝날까?

fin.

I will never be an Aussie

여행이란건 시간을 압축해서 살아보는거다. 여행은 여기 저기 들르는 것이 아니라, 돌아갈 날이 정해진 시간 안에서 내 감수성과 포용력을 최대한 활짝 열고 미지의 세계가 있음을 직접 느껴보는 체험이다.

호주에서 한 달을 살았다. 멜버른에서 3주, 시드니에서 열흘이다.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사흘을 남긴 지금, 바로 내일 아침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해본다.

결국 돌아가는구나, 이제 진짜 집으로 가는구나 하고 작은 안도감이 들 것 같다. 우리는 두 도시에서 지내면서 5개의 숙소를 옮겨 다녔다. 멜버른 Fitzroy에 있는 역사적인 건물, Cairo에서 멜버른 생활을 시작했고, Flagstaff Garden 옆 오피스텔, Great Ocean 로드 트립 중에 머문 Seacroft Estate를 지나 다시 Fitzroy로 돌아와 가장 마음에 든 숙소에서 멜버른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시드니에서는 Surry Hills에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 멋진 courtyard도 있는 이곳은 시드니에서 살아보고 싶게 만드는 집이다. 시드니에 도착한 날 Mardi Gras 퍼레이드를 볼 수 있었다. 작은 언덕의 이 동네를 거닐며 평화롭고 선선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우리가 묵은 숙소들은 모두 각자의 색깔과 장, 단점이 분명해서 나름의 재미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숙소를 옮겨 다니는 일이 간편하지는 않았다. 캐리어 3개를 끌며 트램으로 이동하면 금방 지친다. 그럼에도 우린 다투지 않고 둥지를 옮겼다.

막상 돌아간다니 호주에서 느끼던 하루의 햇볕, 바람, 초록초록함이 벌써 그립다. 호주의 날씨 하나는 정말 불평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럭키한 나라, 호주인들의 성격 형성에 기후가 가장 큰 역할을 했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호주는 광활한 땅에 다양한 남반구 기후를 가지고 있는 축복받은 섬나라다.

이 나라의 시간은 조금 더 천천히 가는 것 같다. 이곳의 따뜻한 바람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고 강렬한 햇볕 아래에 있는 그늘에 머물게 만든다. 여기 사람들의 생체 리듬도 자연과 잘 싱크되어 있어,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에 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연의 리듬에 맞춘 생활이 어찌보면 흘러가는 삶, 무리하지 않는 삶과 닮았다. 그리고 호주인들은 이런 삶이 좋은 삶이라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래서 호주에서의 한 달이 좋았냐라고 묻는다면 뭐라 말 해야할지 조금 고민할 것 같다.내게 익숙한 도시 생활, 여행객으로선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물가, 낯설지만 경이로웠던 자연, 알아 듣기 어려운 호주 영어를 쓰는 이곳 사람들 속에서 한 달을 지내다보면 답변은 보통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다.

멜버른은 천진난만함을, 시드니는 우아함을

짖궃게도 멜버른과 시드니중 한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답을 내리지 못 할 것이다. 멜버른과 시드니 사람들의 기분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둘은 정말 다른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말하면 난 멜버른에 더 이끌렸다.

나는 멜버른을 천진난만함을 지닌 도시라고, 시드니는 우아함을 지닌 도시라고 답 하겠다. 멜버른에서 먼저 3주를 보내 다행이란 생각이다. 평평한 땅에 사는 이 심심한 사람들은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을 많이 한다. 재밌는 F&B도 많아 여행하는 맛이 있는 애어른 같은 도시. ‘로컬 단위’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사는 조금은 낡은 도시. 덕분에 이 독특한 지역성, 폐쇄성을 지닌 문화를 세계에 수출하는 도시가 된 멜버른, 섬나라의 특징인가?

시드니는 멜버른에 비하면 훨씬 우아하고 expressive한 도시다. 마치 멜버른이라는 사촌 동생을 둔 잘 나가는 사촌 언니 느낌이랄까? 시드니 3일차부터 왜 시드니에 오고 싶어하는지 알겠더라. 영국 포츠머스에서 열한 척의 배를 타고 넘어 온 백인들이 쌓아온 도시 역사에 수준 높은 섬세함이 켜켜히 뭍어있는 도시다. 시드니의 CBD는 멜버른보다 훨씬 크고 글로벌 회사들이 많아, 일하는 어른들의 도시라는 느낌도 물씬 든다. 각자 성공을 찾으러 온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만드는 이 다이나믹하고 exclusive한 분위기를 풍기는 도시다.

어느쪽이 더 멋진 도시 같고 이런 것은 없다. 그리고 호주인들이 전반적으로 친절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여행객이라고 더 친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느낌이었고, 또 시드니에서는 대부분이 워킹홀리데이로 일하는 사람들이다보니 업장마다 서비스 수준이 다른 느낌이다. 나도 이것에 대해 별 의견은 없다. 여느 사람 사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어쨋든 원래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돌아가서 할 것들이 많다. 아니 많은가? 긴 여행의 목적이 돌아가서 해야할 것들에 대한 우선순위 재정립이 아니었나? 어쩌면 여행 기간동안 나를 따라다니던 불안함의 원인은 이것인 것 같다. 다~ 하려고 하는 것, 어떻게든 시간 안에 모든 계획을 끼워넣으려는 강박.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누굴 위한 그 모든 것인가? 나의 행복/만족감의 7~80%는 제일 중요한 일 하나에 있지 않을까 싶다. 굳이 빈 곳에 다른 목표들로 채우지 말자는 것을 호주에서 배우고 간다. 여기서 내가 본 호주 사람들은 시간을 악착같이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곧 한국 사회 속으로 돌아가는 입장에서 이것은 호주란 나라가 받은 축복이자, 이 거대한 섬나라만의 way of life라 생각하겠다.

돌아가면 해결되지 못 하고 산적한 문제들이 나를 반길 것이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핸드폰 비행기 모드를 풀면, 신한은행의 보증금 대출 이자 납입 안내 문자가 와 있을 것이고, 통신비 청구서 문자가 있을 것이고 오늘자 신문이 문 앞에 와 있을 것이다.

내가 부재했던 이 세상에 달라진 것은 없다. 나조차도 한 달간의 자리비움을 통해 변한 것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다. 복귀한 삶에 내가 어떤 의미를 새길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