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는 제도의 산물이다. 감옥 체계는 위대한 권력의 ‘경제학’을 실현할 수 있게 해준다.”
미셸 푸코
신체형
태양왕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다’ 라는 말이 나온 이후 18세기의 프랑스는 전제정치가 행해졌다. 신체형은 군주로 대표되는 국가 권력과 죄인의 신체 사이의 처벌 관계였고, 죄인의 신체에 대한 철저한 보복을 통해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였다. 신체형은 고전주의 시대에 국가 권력을 집중하기 위한 정치적 장치였다.
프랑스 대혁명때까지 형벌의 기반은 왕령에 의해서였고 다양한 처벌 방식중 신체형이 가장 큰 몫을 차지했다. 신체는 권력의 대상이자 표적이었다.
범죄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길 수 있는 손해를 초월하여, 그 법규를 위반했다는 의미를 넘어, 법을 포고하고 주장하는 사람(군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여겨졌다. 즉, 아무리 개인에 대해서 범죄를 자행하거나 손상을 입히지 않은 사건이라도 법이 금지한 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지배자의 권리를 침범한 것이며, 지배자의 고귀한 성품에 손상이 간 것이라 이해되었다. 그것은 법이 군주의 의지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군주를 인격적으로 해치는 행위이자, 법의 힘은 곧 군주의 힘이라는 등식에서 군주를 신체적으로 해치는 행위인 것이다.
범죄의 기소부터 조사 절차는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반면, 처형과 형벌은 대중 앞에서 진행하였다. 사법관은 절대권과 독점권을 가지고 피고인을 포위할 수 있었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처벌권이 군중 집단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하는 것이다.
최대한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죄인을 처형하는 방식들이 상세히 연구되고 실행되었다. 숙련된 도살자들은 군주의 권력을 위임받아 잘 짜여진 연극처럼 처형식을 진행했다. 죄인의 고통스러운 비명과 고함, 그리고 죽음은 대중으로하여금 공포에 떨게 했고, 군주가 가진 무제한적 권력의 증인이 되었다.
국가로 대표되는 군주의 전능한 권력은 죄인의 신체를 완벽하게 소유하여 사체에도 추가 징벌을 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강력한 시각적인 효과는 공포를 불러일으킨 것 이상으로, 단순 관찰자로서가 아닌 처형 행사에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 국가 권력을 인정하고 처벌에 가담한 것이 되었다. 스팩터클한 공개 처형식에 참여한 대중은 불복종의 결과를 알게되고, 궁극적인 목적인 군주의 방식대로 대중의 순종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19세기에 이르러 자본주의와 인도주의가 힘을 받으며 공개 형벌과 처형은 감옥으로 처벌 방식이 이동했다.
형벌의 개혁(일반화되고 유순해진 처벌)
누가 잔인하게 사형을 당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가, 계몽주의 사상이 들어오면서 아무리 흉악범의 사형이라도 인간성을 존중해야한다는 주장이 생겼다. 신체형 자체에 대한 혐오감과 피로감과 함께 징벌 자체가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움직임이다. 사실 이 움직임은 처벌에 관한 정치적 전략이 바뀌었을 뿐이다. 여기서의 인간성이란 권력이 처벌권을 행사하는 방식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과 억제가 사회 전반에 대해 정규적 기능을 행사하는 것. 적게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잘 처벌하는 것. 덜 가혹하게 처벌하지만 더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처벌을 많이 하는 것. 처벌권은 사회 깊숙히 작동시키는 것이다.
18세기 후반에 들어, 부르주아지를 중심으로 부(wealth)가 전반적으로 증가했고, 인구도 급증함에 따라 민중의 위법행위에 중요한 목표는 더이상 권리 자체가 아니라 재산이 우선되었다. 민중 계급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위법 행위가 재산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소유권에 대한 침해 재산에 관한 위법 행위에 초점이 맞춰졌다.
처벌권은 군주에 의한 보복에서 사회를 수호한다는 의미로 전환되었다. 사소한 범죄라도 그것은 사회 전체에 대한 공격이다. 범죄자는 공통의 적이 된다.형벌제도라는 것이 모든 범죄를 근절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범죄를 그 차이에 따라 나누어 관리하기 위한 장치로 만들어진 것이다. 형벌과 범죄 성질의 관계는 법규 위반 행위가 사회 질서에 미치는 영향에 의해서 결정된다.
형벌의 대상이 신체에서 정신으로 넘어간다. 범죄는 자기에게 이익을 가져오기 때문에 일어나기 때문에 형벌의 불이익을 연결시켜 예방 효과를 만든다. 소송 절차는 공개되어야하고 유,무죄 선고는 만인이 이해할 수 있고 납득될 수 있어야 한다.
형벌의 목적은 범죄의 표상을 가동시키는 원동력을 파괴하는 것으로 초점이 이동한다. 범죄를 발생시킨 이해관계를 무력하게 만드는 일이다. 예를 들면 방랑이라는 범법행위 뒤에는 나태함이 있으므로, 나태함을 처벌해야한다. 즉 범죄지향적으로 되는 힘을 차단시켜야 한다. 범죄에 대한 공동의 관심을 깨뜨려서 그것을 이용해 형벌이 두려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 죄인에게 징벌은 표적일뿐, 징벌은 죄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처벌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죄인에게 고문의 공포를 주지는 않지만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보복적인 법의 기억을 끊임 없이 되살려서 유익한 공포를 만든다. 과거에 수형자의 신체는 국왕의 것이었지만 이제는 사회적인 것으로 변해 집단적으로 유익한 대상이 된 것이다.
규율
규율은 지배의 일반적 방식이 되었다. 규율을 통해 죄인의 신체를 장악하여, 복종하고 규율화된 신체, 순종하는 신체를 만든다. 사소한 행위에까지 규율을 작동시켜서 인간에 대한 치밀한 통제를 가능하게 했다.
규율은 먼저 대중적인 장소와 구분된 폐쇄적인 장소가 있어야 한다. 이곳은 획일적인 규율에 의해 보호되는 곳이다. 규율은 분할된 공간을 조직하는 일이다. 각 분할된 신체와 요소를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게 만든다. 규율은 개체, 자리, 서열을 조직화함으로써 복합적인 공간에 기능적이고 위계 질서를 갖는 공간으로 바꾼다.
규율은 개인의 신체와 시간을 자본화하고 그것을 활용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 규율은 신체에 반복적이고 점증적인 임무를 부과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규율을 만든 곳은 이러한 신체들의 힘을 조합하여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장치를 만들어낸다.
규율 권력은 신체를 사적으로 취해서 강제로 징용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훈육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사람들의 힘을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힘들을 전체적으로 증가시키고 활용할 수 있도록 묶어두는 것이다.
감시
규율이 잘 작동하려면 위계질서를 통한 감시가 필요하다. 높은 규율이 필요한 시설은 서로가 감시를 하게 만들고 수많은 장치를 통해 무한한 감시 체계를 만든다. 완벽한 감시장치라면 단 하나의 시선만으로 모든 것을 언제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감시는 규율과 징계의 권력 안에서 작동하는 특정한 톱니바퀴다. 자본주의 특유의 성격을 갖게 된다. 감시 덕분에 규율 권력은 규율이 행사되는 장치의 경제성과 목적이 내부적으로 결합된 통합 조직을 갖는다.
규범
모든 규율 체제의 중심에서는 작은 처벌의 매커니즘들이 작동한다. 아주 사소한 행동들까지 처벌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고, 동시에 규율의 장치와 무관한 것들에도 처벌 기능을 부여하는 일이 중요하다. 규율적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들은 규칙을 따르지 않는 모든 일탈행위이다. 기준 미달이라는 막연한 내용도 처벌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규율에 따른 징벌로 유지시키고자 하는 질서는 인위적인 질서이다.
평가
평가는 감시하는 위계질서의 기술과 규범화를 만드는 상벌제도의 기술을 결합한 것이다. 평가는 규범화를 하는 시선이고, 자격을 부여하고 분류하고 처벌할 수 있는 감시이다. 평가는 객체로 인식되는 사람들의 예속화를 나타내며, 이들의 객체화를 나타낸다. 한 개인과 다른 개인들의 끊임없는 비교가 점점 더 중요해지며, 시험이란 평가의 기본 요소로서 끊임없이 재가동되는 권력의 의식이다.
판옵티콘 권력
감시는 지속적인 기록장치에 의존한다. 질서는 모든 혼란을 정리하는 기능을 갖는다. 벤담의 판옵티콘은 모든 개인을 완전히 개체화시켜 항상 밖의 시선에 노출시킨 건축적 형태이다. 권력이 가시적이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현재 감시를 받는지 아닌지를 결코 알아서도 안 되지만 자신이 항상 감시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어야 한다. 즉 판옵티콘은 바라봄-보임의 결합을 분리시키는 장치이다. 개인은 정보의 대상이 되긴 해도 정보 소통의 주체가 되지는 못 한다. 불가시성은 질서를 보장한다. 감시 작용이 멈춰도 감시 효과는 지속된다.
감옥
감옥의 자명한 이치는 ‘자유의 박탈’ 이라는 단순한 형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유의 상실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가치를 갖는다는 점에서, 벌금보다 더 나은 평등주의적 징벌이다. 감옥은 수형자의 시간을 뺏음으로써, 그의 범법행위가 피해자의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에 피해를 주었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형태다. 감옥은 ‘교정’이라는 보조적 역할을 갖고 있는 합법적 감금이었고, 합법적으로 자유를 박탈해서 수형자의 변화를 계획한 것이다.
감옥은 철저하게 규율과 징계의 기구여야 한다. 감옥은 신체 훈련, 노동 능력, 일상 행동, 도덕적 태도, 적응력 등 개인의 모든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 감옥은 완전 규율, 끊임없는 규율의 체제이고 완전한 교육의 강제이다. 그것은 질서와 규칙성의 원리이고, 엄격한 권력의 형태들을 암암리에 전달하고, 육체를 규칙적인 움직임에 따르게 하고, 흥분상태와 부주의를 없애 주고, 수형자의 행동에 위계질서와 감시가 새겨지도록 한다. 과거 신체형을 대신한 것은 단순하게 집단적인 수감(감옥)이 아니라, 치밀하게 연결된 규율의 장치 그 자체이다.
감옥의 실패에 대한 주장
1) 감옥이 범죄 발생률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범죄와 범죄자 수는 일정하거나 오히려 더 증가한다.
2) 구금은 재범을 유발한다. 감옥은 교정된 개인을 석방시키기는커녕, 위험한 범죄자들을 사회에 분산시켜 놓는다.
3) 감옥은 수형자들에게 부여한 반자연적 생활방식과 극단적인 부자유를 강요하기 때문에 범죄자들을 만들어낸다.
4) 교육적인 의미보다 의미 없는 노동 착취만 있다.
5) 감옥은 범죄자들이 연대하여 미래의 공범 관계를 준비할 수 있게 한다.
6) 감옥은 운명적으로 수감자들의 재범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7) 감옥은 수감자의 가족을 빈곤상태에 빠지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범죄자를 만들어 낸다.
바람직한 행형 조건의 준칙
1) 구금형은 개인의 태도 변화를 본질적 기능으로 삼아야 한다. ‘교정의 원칙’
2) 수감자들의 형벌의 경중에 따라 격리되거나 적어도 분류되어야 한다. ‘분류의 원칙’
3) 수감자들은 수감 생활 결과에 따라 형벌의 형기가 조절될 수 있어야 한다. ‘형벌 조절의 원칙’
4) 노동은 수감자들의 변화와 점진적 사회화를 낳는 근본적 부분들 가운데 하나여야 한다. ‘의무이자 권리로서의 노동의 원칙’
5) 수감자 교육은 사회의 이익에 꼭 필요한 예방조치이면서 동시에 수감자에 대한 의무이다. ‘교도소 교육의 원칙’
6) 감옥의 체제는 정신적,기술적 역량을 지닌 전문요원이 책임지고 운영하도록 한다. ‘구금에 대한 기술적 통제의 원칙’
7) 과거의 수감자가 결정적으로 사회에 재적응할 수 있을 때까지 구금은 통제와 구제의 방책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부차적 제도의 원칙’
위법 행위와 범죄
이른바 ‘감옥의 실패’는 감옥 운용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것. 제도로서의 감옥이 오랫동안 불변의 상태로 존속하였다면, 형벌적 징역의 원칙이 문제시되지 않았다면 감옥 체계가 깊이 뿌리 내려 빈틈없이 기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법은 위법행위를 규정짓는 것이고, 형벌 기관의 역할은 위법행위를 줄이는 것이고, 감옥은 처벌장치중 하나다.
감옥과 일반적 징벌들은 범법행위를 없애도록 마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구분짓고 배열하고 활용하도록 마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법을 위반할 위험이 있는 자들을 순종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그 대신 일반적 예속화 전술에 맞게 위법행위를 정비하는 경향을 갖는다고 가정할 수 있다.
따라서 형벌제도는 위법행위를 관리하고, 관용의 한계를 설정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부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압력을 가하고, 일부 사람은 배제하고, 일부의 사람은 쓸모 있게 만드는 등의 방법일 것이다. 요컨데 형벌제도는 단순히 여러 위법행위들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차별화하고’ 그것들의 일반적 ‘경제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법 자체 또는 법이 적용되는 방식이 어떤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기 때문일 뿐 아니라, 형벌 제도를 매개로 한 차별적 위법행위 고나련 전체가 이러한 지배의 메커니즘에 속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합법적 징벌은 위법행위에 관한 전반적인 전략 안에 놓고 보아야 한다.
범죄는 이해관계나 정념에 의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담긴 잠재적 성질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사회계급이 거의 배타적으로 자행하는 행위이다. 범죄가 개인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이방인처럼 소외되었기 때문에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다. 법이 만인의 이름으로 만인을 위해 만들어진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법은 일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효과를 인정하는 것이 더 현명한 생각이다. 원칙적으로 법은 모든 시민들에게 의무를 부과하지만, 가장 숫자가 많고 가장 배운 것이 없는 계층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법원에서는 사회 전체가 사회 구성원들 가운데 한 사람을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를 담당하는 한 사회계층이 무질서에 빠진 다른 사회계층을 제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률과 사법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계급상의 불균형을 거침없이 공언한다.
감옥은 모든 위법행위를 확립하는 데 기여한다. 또한 감옥은 모든 형태의 위법행위를 상징적으로 요약하면서도 별도로 취급하고 강조한다. 감옥은 위법행위 자체를 줄이려는 곳이 아닌, 그런 위법행위들을 구별하고 정돈하며 통제할 수 있게 하는 형법체계의 결과이다.
구금이라는 형벌제도는 범죄를 단속하는 일이 가능하다. 또 계속적인 감시를 실행할 수 있게 하여 실제적 위법행위들을 고립시키거나 적어도 아주 낮은 수준으로 억제될 수 있다. 위법행위들이 폭넓고 명백한 형태들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해 준다.
범죄나 범죄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19세기 이전부터 당연시되었다. 범죄는 위법행위들을 관리하고 이용하기 위한 도구이다. 범죄는 경찰력을 통해 지역 사회의 지속적 감시, 통제적 장치를 구성한다. 범죄는 정치적 관측소로서 기능하며, 이러한 감시는 감옥과 짝을 이루어서만 가동할 수 있다. 감옥은 폐쇄적이면서 통제하기 쉬운 범죄자 사회의 조직화를 재촉한다. 경찰의 감시는 위법자들을 감옥에 공급하고, 감옥은 다시 감옥에 집어넣는 경찰 단속의 보조자가 된다. 사법은 위법행위들에 대한 차별적 단속을 위한 도구인 것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