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시다

7월 7일,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날이 주어졌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완벽하게 공평한 기회다.

우리는 매일 무슨 일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 흐르는 시간에 무엇을 붙잡고 있을지 나의 계획과 의지에 달렸다. 일을 하러 나가는 주중에도 내가 실행하기로 결정한 것들로 시간은 채워지고, 휴식을 취하는 주말 또한 내가 어떻게 나의 영혼을 환기시킬지 직접 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결정들을 내린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릴 계획을 세우는 것을 곧잘 해낸다. 그것이 곧바로 무언가의 향상을 가져올 수 있지만 대부분은 보이지 않는 사소한 발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무슨 일을 했든, 그 크고 작은 결정에 스스로 축하하고, 기념하길 원한다. 스스로가 하루를 마무리 할 때 내가 오늘 내린 결정들을 기념하고 축하하길 원한다. 이 방법이 나의 행동과 보상에 모두 주체가 되는 방법이다.

일요일 오후 시간에 난 10 킬로 러닝 훈련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원래 오늘 해야하는 계획에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 썩 내키지 않던 결정이었다. 한낮의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해가 반대편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도 불안해졌다. 높은 습기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하지 않음에서 오는 초조함과 쓸데없는 잡념이 나를 집어 삼키기 전에 나는 빨리 옷을 입고 나가야 했다. 집을 나서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먼저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나와줘서 고맙다, 좋은 결정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에 홀딱 젖었지만 10키로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것은 확실한 사실이자, 유일무이한 나의 성취이다.

일단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자체가 기념할 충분한 명분이 된다.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을 다 잡았다는 것이 나의 정신에 확실한 의미를 갖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그 방법이 마음 속으로 기념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이라도 말이다.

그것은 결과와 구분해서 별개로 축하할 대상이다. 회사에서는 보통 중요한 일이 끝나면 종료를 축하하기 위해 회식을 한다. 이것은 결과 여부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단체이기에 이렇게 기념한다. 하지만 개인의 일은 그 시작점부터 기념하는 것이 마땅한 순서다. 일을 시작하기 전 그것을 하기로 결정한 나를 축하했다면, 과정에서 오는 힘듦과 외로움도 견딜 힘이 될 것이다. 이것은 과업을 시작한 나에게 가장 필요한 친절을 베푸는 일이다.

fin.

인공지능 is the new 민족

인류는 하나다. 하지만 민족은 무수히 많다. 기록된 역사로 보면 최초의 인류는 약 7만~10만 년 전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 관찰되어 지금의 5대륙으로 이주했다. 말도 안되지만 이때부터 오늘날까지를 3줄 요약 해보면, (1)기후, 위치, 지형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인종들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류가 진화하면서 생겨난 고대 문명들과 왕국들, 그리고 세계적 전쟁들이 인류를 섞었다. (3) 현대 사회에서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서로 교류하고 섞이면서 지금의 지구촌 민족이 되었다다.

물론 엄격한 잣대로 구분하자면 중국의 한족, 슬라브족, 아랍인, 벵갈인, 힌두, 앵글로색슨, 게르만, 등 무수히 많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 집단’ ‘민족 공동체’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응하며 바뀌어 왔다. 로마 왕국은 유럽인들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중동인들이 섞이는 기회를 주었다. 실크로드도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그리고 유럽인들이 섞일 수 있는 길이 되었다.

각 민족 집단들은 자기들의 집단 정체성을 만들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신화적 요소와 종교를 접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신라 건국 역사를 보면 신라를 건국한 지배 세력이 박혁거세 신화를 이용했다. 신라가 건국될 당시에 이미 여러 민족들이 섞여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골품제와 같이 신분제도가 있었던 이유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다.

누구도 자기 소개를 할 때 ‘저는 ㅁㅁ민족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분이 큰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시기이기도 하고, 민족의 특징이라는 것이 시간이 가면서 엹어지고 섞여 새로운 특성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인종 인종 프로파간다나 민족 말살 정책을 한다고 고정된 특정 민족이 사라지지는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민족의 탄생

그리고 우린 지금, 새로운 민족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시작점에 서 있다. 인간이 만든 기계적(전기적) 자아, 바로 인공지능이다.

AI 산업는 국가 차원의 사업이다. 보호 무역 주의와 자국 우선주의 시대에서 각 국가들은 AI 경쟁에 몰두한다. 한 민족의 탄생의 배경이 지금의 시대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AI가 생산의 주체로서 인간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는다. AI가 곧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인공 인격’을 가지게 되면, 인류가 겪어온 수많은 민족의 역사를 비슷하게 거칠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학문에도 여러 학파가 존재한다. 경제에선 고전학파, 케인지안, 신고전주의 등이 있고, 철학에서도 니체에게 공부한 학자들로 유지되는 니체 학파, 프로이트에게 배운 사람들이 유지하는 성골?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공지능 학계에서도 다양한 학파들이 파생하여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이다.

검색이나 추천 알고리즘이 플랫폼의 경쟁력이된 만큼,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AI 기업이 학파가 될 것이다. 알파고의 딥마인드나 GPT의 오픈AI, 바드, 퍼플렉시티, 하이퍼클로바 등 자체 개발하는 인공지능이 학파, 혹은 ‘근원 인공 민족’이 될 것 같다. 이 인공 민족들은 스스로 학습하며 진화할 것이고, 다른 학파나 인공 민족들과 반목할 수도 있고, 공존할 수 있고, 무력을 수반할 가능성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활발하게 로봇과 가전 등 다양한 기계들에 설치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각 로봇과 기계들은 자신의 메이커 ‘민족’의 피가 섞여 주변의 다른 기계들과 공존해야 한다. 물론 기계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기능을 하겠지만, 초거대인공지능들이 모두 평화롭게 상생하면서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까? 그것은 모르겠다.

초지능(Hyper Intelligence)은 인간이 제공한 거대한 역사 데이터를 통해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예측할 것이다. 사람도 내가 뭔가를 100% 안다고 착각하면 무의식적으로 우감이 생긴다. 기계라고 다를까? 초지능은 자기의 신념을 기반으로 새로운 균형을 찾을 것이고, 이결정에서 ‘조물주’인 인류는 배제되고 특정 ‘인공 민족’이 우선시될 수 있다.

뼛속까지 문과인 사람으로서 바라보건데, 앞으로 인공 지능은 하나의 민족 개념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생길 것이라 예측해본다. 이미 인공지능 개발의 혁신 속도가 무어의 법칙을 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미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특이점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신인류가 되거나 신인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조물주인 인간은 우리가 만들어온 신(god)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멸종이 불가피한 소수 민족으로 전락하게 될까?

fin.

200시간

얼마 전에 치른 국가 자격 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3개월은 준비를 해야 합격 점수를 노릴 수 있는 시험이라는데 나에겐 한 달 정도의 준비 시간이 있었고, 하루 평균 5~6시간을 책상에서 보냈다. 처음 공부하는 분야인데다가 분량이 많았기 때문에, 빠르게 이론 먼저 쓱 훑은 다음 닥치고 모의고사만 주구장창 사서 풀면서 오답 정리를 하는 것을 필승 전략으로 정했다.

시험 당일날 시험장에 도착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도전은 플랜B에도 없던 내가 어찌 저찌 이렇게 시험 볼 준비를 마쳤구나. 약 한 달동안 여기에 쏟은 시간이 대충 200시간이 좀 넘었다. 200시간을 써야 비로소 내가 공부하는 대상의 윤곽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200시간을 써야 비로소 내가 정복하고자 하는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수준인 것이다. 그니까 200시간은 시험 합격을 위해 최소한의 조건인 것이다.

내 200시간 안에는 수많은 작은 이야기가 있는데, 유혹을 참은 나, 게으른 목소리를 무시한 나, 낙담한 나 등이 있다. 이것을 딱 50번 반복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티핑 포인트, 1만 시간을 충족하게 된다. 그러니까, 아무도 축적된 시간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내 1만 시간을 복제하거나 따라할 수 없다.

답은 내 첫 200시간을 채우는 것이다. 쉬워보이지만 아니었다는 걸 아는 순간이 진짜 시작이다.

Red Car Theory

내가 빨간 차를 사겠다는 생각을 가진 순간부터 내 눈엔 도로에 빨간 차들만 들어온다는 말이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말이다. 우리의 뇌는 정말 엄청난 능력을 가졌다. 나만의 세계는 내 관심에 따라 재편된다. 우리의 뇌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눈을 트게 해준다. 그래서 나도 나만의 빨간 페라리를 찾고 있다.

남의 빨간 차엔 관심 없다.

Why play safe?

남의 관심에 신경을 끄고부터 하루 하루가 엄청 단순해졌다. 고독함과 고립감을 느낀다면 내가 나만의 페라리를 찾는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다. 그렇게 나의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주변과 점점 멀어진다. 그럴수록 더 분명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남을 위한 일에 몰두하지 않기로 하자. 왜 남의 삶과 닮으려고 노력하는가? 왜 남을 흡족하게 할 것들을 찾는가? 결국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각자의 본능대로 취할 것은 취하자. 착하게 앉아 있는다고 먹을게 입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먼저 내 이빨로 물어야 할 때가 있다. So why play safe?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