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를 벗어나지 말 것

9월 중순에 접어들었지만 더위가 좀처럼 식지 않는다. 아직도 열대야로 잠을 설친다. 시원했던 아침 공기는 금방 데워져서, 초여름부터 본격적인 장거리 훈련을 시작한 나에게 특히나 고달프다.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와도 곧 해가 뜨면 금방 더위를 먹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 준비해야 한다.

특히 오늘 아침은 뛰기가 싫었다. 어제 마음을 굳게 먹고 잠들었는데, 참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다. 잠은 깼지만 눈을 감고 핑곗거리를 생각해 본다. 그럴듯한 핑계도 미래의 내가 느낄 죄책감을 대신하지 못한다. 결국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나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어쨌든 나가서 훈련을 소화하였다, 훈련량을 113% 초과 달성하였다.

요즘 스스로에게 되뇌는 주문이 있다, “Stick to the plan, 계획을 벗어나지 말 것”.

계획한 일정에 맞춰 훈련량을 쌓아가다 보면 어떤 날은 선약들 때문에 뛰기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 불가피하게 하루 미룰 때도 있지만 때론 단순히 기분이 내키지 않는 날이다. 사실 이 기분이란 게 한 번 후 하고 불면 날라갈 만큼 가벼운 것인데, 이 기분이 우리의 계획 실행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 글은 내가 세운 계획의 끝까지 도달하려는 마음가짐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자기 훈련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과를 논하기 전에 계획대로 움직였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성취라 생각한다.

첫 번째 이유는, 계획을 고수한다는 것에는 노력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내 목표를 세상에 선언했다고 할지라도, 복잡계로 이루어진 세상의 물결이 갑자기 내가 수영하기 편한 물살로 바뀌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흐름을 역행할 상황들을 마주하겠다는 각오이다. 때론 거슬러 오르는 것을 피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계속 관찰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오늘 해야 할 일에 힘을 모으되, 덜 중요한 일들은 유연하게 조정하는 용기 있는 임기응변. 쉽게 말해 편하게 살지 않겠다는 자세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생각-행동 회로를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목적이 없는 계획은 없다. 목표 의식이 생긴 다음에 계획의 필요성이 생긴다. 뇌에 얻고 싶은 것을 무언가를 입력하면 아주 빠르게 최적의 방법을 찾아준다고 한다. 목적 프롬프트(prompt)를 입력하면 가장 좋은 how를 출력해 주는 최고의 AI 코파일럿이다. 근데 문제는 우리의 뇌가 제시한 how(계획)를 우리 스스로가 속이려든다는 것이다. 경쟁자가 많아서, 포화된 시장이라서,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등 다양한 실질 이유를 들어 우리의 뇌가 제시한 BEST how를 챌린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이 과정도 학습한다. 이러 행동이 반복되면 목표를 세웠고 뇌가 좋은 계획을 안내했음에도, 우리 뇌는 아 얘가 조금 하다가 계획을 폐기할 것이다, 혹은 계획을 자주 수정하겠구나 하고 예측할 것이다. 계획의 완성은 실행인데, 이 완성-실행 알고리즘이 약해지면 점점 실행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그래서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큼 계획을 지키는 일 자체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은 힘들겠지만 이것이 우리의 뇌를 훈련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다, 나에게 더 친절할 것. 친절하다는 것은 필요할 때 있어주는 것이다. 지금 약속을 지킴으로써 미래의 죄책감, 책임감을 덜어주는 친절함이다.

마지막 이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분기 초에 다 같이 모여 세웠던 타임라인이 마감일에 가까워질수록 수정이 잦아지는 것을 목격한다.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처음 계획이 어설펐거나, 설정한 목표에 비해 계획 수준이 낮거나, 회사 밖 상황이 변했거나. 하지만 나는 리더십에서 계획을 충실하게 끌고 갈 의지가 작았던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계획은 계획일 뿐, 언제든지 입맛대로 수정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리더십 아래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 일을 추진할 때 얼마나 힘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후진 의사 결정 문화를 만든다.

그에 반해 어떻게든 주간 계획을 지키려는 조직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처음 계획했던 목표와 가장 근접한 결과물을 얻을 것이고, 그렇게 적응해갈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회사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주거나 아니면 손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반에 A라고 해서 A에 맞춰 일을 추진하던 협력사들에게 ‘A가 B로 변경되었고, 상황상 C로 변경될 수도 있다’ 고 고지한다면, 누가 이 회사와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도모하려 하겠는가.

글을 마무리한다. 계획-실행 메커니즘은 나의 무의식과 관여돼있다. 계획대로 하겠다는 각오. 혹시나, 달리면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거나 몸 상태에 문제가 있는데도 계속 달리라는 말이 아니다. 잠시 멈춰서 스트레칭도 하고 조금 걷다가 다시 뛸 수도 있다. 내가 완주를 계획한 이 코스를 떠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다.

타이슨이 말했다.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19세기 독일 프러시아의 작전 참모였던 Helmuth von Moltke the Elder도 이렇게 말했다, “적을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 계획 따윈 없어진다(No Plan Survives First Contact With the Enemy)”.

이 어록들을 보고 역시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없길 바란다. 오히려 스포츠 경기와 전쟁통에서 저런 유명한 어록이 나오게 된 이유를 나와 같이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이 전쟁 같은 세상에 우린 매일 링 위에 오른다. 종이 울릴 때까지 정신없이 싸운다. 어떤 라운드에서는 상대의 몸에 더 많은 펀치를 꽂아 넣고, 어떤 라운드에서는 간신히 서서 버틴다. 그게 인생이지 않을까! 상대를 KO 시키거나 판정승을 얻을 때까지 계속 링에 올라 코치의 가이드(계획)에 충실하는 것.

누가 그런다, 계획대로 하면 뻔한 결과가 나올 뿐이라고. 그건 남들이 다 하는 계획을 그대로 따라 했을 때다. 내 계획은 절대 뻔할 수 없다고 믿는다. 내 계획과 실행 방법은 유일하다.

fin.

은밀하게 위대하게

입춘. 가을의 초입이다.

신기하게도 이른 아침과 밤에 부는 바람의 촉감이 변했다. 아직도 낮은 후덥지근해서 나를 축축 늘어뜨리지만, 입추는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생각해 보면 옛 조상들이 정한 절기가 현대 사회에 와서도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무더위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을 조상들에게 입추의 의미는 훨씬 컸을 것이다.

아무튼, 봄이 지나간 자리에 여름이 왔고, 이제 가을이 오고 있다고 자연이 우리에게 말한다. 시간이 흘러감에 맞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점을 몸소 느끼고 있다. 이것을 겸허하게 피부로 받아들인다.

올해 여름도 어김없이 마라톤 훈련에 돌입했다. 올해는 가을의 전설, 춘천 마라톤에 도전한다. JTBC 마라톤보다 일주일 먼저 시작하기 때문에 훈련량을 조금 더 빠르게 올리고 있다. 작년보다 더 좋은 기록을 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처음 뛰는 코스이다 보니 훈련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완수하는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한다.

그동안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르는 하늘 때문에 러닝머신 위를 뛰었지만, 이제는 어둑어둑한 아침과 저녁 시간에 밖에서 뛴다. 이 시간은 대부분의 사람이 잠에 들 준비를 하거나 자고 있을 은밀한 시간이다. 이 시간은 내가 성취하고 싶은 내 위대한 버전이 문득 나타나는 시간이며, 내 마음이 솔직한 단어를 사용해 야망을 속삭이는 시간이다.

러닝이 주는 가르침이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내 힘으로 시작해서 내 힘으로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출발선을 넘는 첫 발을 뗐다면 골인 지점에 나를 데려다주는 것도 그 첫 발이다. 100킬로가 목표라면 1킬로씩 100번 모두 내가 해야 한다. 1킬로만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러닝은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가장 순수한 자연의 방식으로 알려준다. 출발한 사람과 도착한 사람이 필연적으로 같다는 것, 마치 여름이 지나면 약속한 듯 찾아오는 가을과 같다.

이 진리를 날 것의 형태로 자주 경험하다 보면, 내 삶 가운데에 내가 주도해서 시작해 종료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 줄을 알게 된다. 단순히 혼자 하고 같이 하는 일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의지와 마음가짐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다. 의지를 마음에 품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는 것은 은밀하고 위대한 결심이다.

산다는 것은 손바닥 뒤집듯 나만의 세계를 단단하게 건설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타인을 내 세상에 초대하는 것이며, 나만의 세계가 확장되어 함께 사는 세계가 되는 모습이다. 동등한 멀티버스라기보다 내가 만드는 세계관 속에 함께 사는 세계관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세계는 결국 같은 세계이며, 나만의 세계가 클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품는다.

그래서 내 세상의 크기는 은밀하고 위대하게 품은 의지로 결정된다. 그래서 믿어야 한다. 그것을 나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내 의지로 타오를 수 있고 그 불도 스스로 끌 수 있는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fin.

결국에 과정

DYOR

BYOB, bring your own beer(자기가 마실 맥주는 자기가 가져오기)가 아니다. DYOR은 NFT를 구매해본 사람이라면 최소 한 번은 본 단어다. ‘Do Your Own Research‘의 줄임말로, NFT 프로젝트의 백서(white paper) 끝에 있거나, 프로젝트 팀이 꼭 마지막에 붙이는 단어다. ‘당신이 직접 조사를 하십시오’, 어찌 들어보면 투자 유의 문구로 들리기도 하고 자기 면책 조항처럼 들린다.

자기들의 프로젝트에 돈을 내려는 잠재 투자자들에게 ‘우리의 프로젝트에 관심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의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이 문서를 꼭 읽어보세요. 하지만 이 내용이 개별 투자자별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으니 개별적인 조사와 고민을 해보시는 것을 권유드려요.’ 라는 메시지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창이었던 NFT 붐이 꺼진 이후 남은 것은 절반이 훨씬 넘는 ‘rug pull’이었다. 이 ‘갑작스러운 사기성 사업 철수’로 투자자들의 돈이 삭제됬고 NFT와 가상화폐씬은 아직도 부정적인 낙인이 찍혔다. 이 정도면 DYOR은 프로젝트의 rug pull 출구 전략의 하나였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DYOR은 ‘네가 결정을 한 것이니 나중에 우리 탓 하지 마시오.’ 란 뜻이다.

내가 지금 회사에 조인한 이유는 NFT의 잠재력뿐 아니라 블록체인이 가진 ‘독립적인 항상성’이었다. 이 기술은 탈중앙화적인 합의 매커니즘을 통해 선한 목적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사업을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결과 이전에 있는 모든 과정들이 블록체인 참여자들에게 모두 분산 관리되기 때문에 드디어 과정이 중요한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경험한 것은 나의 이상과 달랐다. 과정에 가치를 둘 줄 알았지만 결국 블록체인 운영사의 목적대로 움직였다. 거짓말이 난무했고, 책임을 회피했다. 내가 본 블록체인씬에는 과정은 없었다.

블록체인상의 합의는 속일 수 없다, 하지만 블록체인 하나의 기록 장부에 불과하다. 그 기록 장부를 작성하는 사람들을 매수한다면? 이미 블록체인 생태계에 참여한 사람들이 작당모의를 하였다면? 이것은 컴퓨터상에서는 무결한 의사 결정 과정이었다 할지라도 그 과정 이전의 과정이 이미 부정직하고 거짓 그 자체라면? 어쩌면 블록체인은 사기업 자본으로 하기엔 핏이 안 맞는 프로토콜이다.

Due Diligence

기업은 법적 계약을 앞두고 있거나 신규 사업을 계획할 때 Due Diligence 를 행한다. 주체가 직접 합리적인 노력을 다해 조사하는 행위를 말한다. Due Diligence는 ‘해야하는’ 이라는 뜻의 라틴어 ‘debere’ 와 ‘신중함’ 이라는 뜻의 ‘diligentia’가 합쳐졌다. 즉, ‘신중해야 한다’ 라는 의미다.

기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Due Diligence를 한다. 공시된 자료를 활용하기도, 발행 기사를 열람하기도, 직접 실사를 나가서 존속하는 사업체인지 확인하기도 한다. 딱 정해진 방법이 있다기보다 실행 주체가 직접 노력하여 리스크를 최소화하라는 법적/사업적 책임인 것이다. 나의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것이니 잘 해야하는 과정인 것이다.

근데 문제는 내가 노력해도 100%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다. 최선을 다해 DD를 했지만 뭔가 깨름칙하다면? 혹은 DD 할 정보 자체가 부족하다면? 감을 믿어야 할까? 그렇기 때문에 계약서가 있고, 제3자 보증이 있고, 신용 평가기관이 있고, 중재사가 있고, 리서치, 컨설팅, 로펌이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어찌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최소한의 신뢰를 주어야만 합의가 성립되고 일이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점주님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제 본 추적60분의 제목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지원이 없고 약속된 매출이 보장되지 않아 망해가는 상황을 담았다. 백종원의 연돈볼카츠 가맹점이 이슈의 시작이었다. 억지스러운 백종원 때리기인가, 혹은 더본 코리아의 잘못된 영업 관행인가? 아직 나온것은 없다. 그러나 이건 확실히 알 수 있다, 계약 당사자들 모두에게 깔끔한 과정은 아니었구나 라는 것은.

점주들은 그 브랜드의 대리점/가맹점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본사도 가맹점을 모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본사는 가맹점을 모집할 때 법에 따라 평균 매출 수준을 안내해야한다. 가맹점주가 되려는 사람은 공시된 정보외에도 발품을 팔아 자기의 결정에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이려는 합리적인 노력을 해야한다. 본사는 ‘최소 월 매출 1천은 찍을 것입니다’ 라는 식으로 과장된 기대감을 주어서는 안되고, 예비 점주도 심지어 대통령도 순이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입지, 경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리스크를 염두한 독립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본사는 DYOR을 말하면 안 되고 점주는 열심을 다해 DD를 해야한다.

제대로 안 보고 안 읽는 시대

유튜브는 한국에서 제일 많이, 오래 쓰는 앱이다. 유튜브는 우리에게 정보를 검색하고 발견도 하는 앱이 되었다. 시각 정보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미 활자를 포기한듯하다. 그러니 문서 계약이든, 글로 써 있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읽지 못 한다. 처음에는 웃던 사이가 후회하는 사이로 되는 일이 많다. 나도 마찬가지다, 투자할 때 ‘약속된’ 달콤한 수익 기대감 때문에 제대로 된 DD를 하지 않았다. 이것은 나의 잘못이고, 나의 리스크다.

결국에 과정

길게 돌아왔다, 내 결론은 이것이다: 세상 만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는 것. 세상은 결과를 가지고 떠드는 곳이다. 과정을 아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일 뿐이며 이들만이 그 결과의 실체를 가장 잘 알 뿐이다. 과정은 결과의 단순한 프리뷰가 아니다. 과정은 그 자체가 결과다.

과정이 지저분하면 좋은 결과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다. 원치 않은 고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과정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잃지 않는(=지키는) 지혜다. 과정의 속도는 중요치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절차이냐, 이 절차에 모두 자신이 있냐는 것이다. 모두 맞다고 느끼는(feels right) 과정 말이다. 결국 사필귀정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