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내가 소유하는 것들.

내가 소유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것들.

내가 잠시 쓰는 것들.

내가 잠시 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 것인 것들.

내가 세상을 살아갈 때, 이 4가지를 제대로 분류하지 못 해서 일어나는 일들이 참 많다. 내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떠난 여자, 그녀의 머릿속 미래 계획에는 내가 없었다. 또, 내가 낳아 키운 자식일지라도 떠날 때 떠나보내지 못 하고 내 소유물이라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다. 이런 부모들 품 안에 있는 자식들은 자신이 부모의 소유라는 생각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식의 결정권을 소유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갈등을 빚는다. 특히 애착과 집착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인간관계에선 이상하게 우리가 남의 소유한 것 같은 착각을 갖게 만든다. 그들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는 있는데 그것이 그를 소유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복잡하게 소유에서 단기 소유를, 렌트를 장기렌트로 나누지 말자. 그보다, 대상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관념이든 우리가 소유하거나 빌린다는 생각을 했을 때 우리가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보통 무언가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의 최후도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연애에 있어 소유욕이 강하면 상대방의 개인 시간을 무시하고 나의 편리함에 맞추려고 억압하게 된다. 괜히 서운하고, 실망하고, 혼자 상처받고, 분노가 치미는 것의 원인이 대부분 내가 상대방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나또한 그렇고, 이 소유했다는 생각에서 관심과 애정이 나오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니 책임감과 함께 소유의식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갓난 아기가 커서 자기가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을 할 수 있을 시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실제 부모의 통제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한 성인 자녀들의 직장 선택부터 배우자 파트너 선택까지 깊게 관여하고 간섭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애착이라 말하며 집착을 하거나 조언이라 말하지만 명령인 것이다. 황혼 이혼이 느는 현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원히 내 사람이라 생각했던 사람도 영영 남이 되어버리는 결과가 올 수 있다. 사람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제 생명이 없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내가 내 돈을 주고 샀거나 선물을 받은 것들은 내 것이다. 내것은 남이 마음대로 만지지거나 가질 수 없다. 등기권, 소유권 등이 있으면 물건이 100% 내것이 되기 전에도 우린 이것을 소유할 수 있다. 대출을 낀 집, 할부를 낀 자동차, 할부 낀 최신 아이폰처럼 말이다. 100% 사용자는 나지만 따지고 보면 뺏길 위험이 있는 내 것이다. 피곤하게 보면 내것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들을 내것이라고 여긴다. 단지 옆 혐오시설이 들어선다고 반대 서명을 하는 것도, 매주마다 세차를 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지 않을까?

이처럼 왜 우리는 100% 소유하지도 않은 것들에 우리의 에너지와 관심을 쏟을까? 소유에서 오는 심리는 무엇일까? 시작과 끝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소유물이 내 뜻대로 최대의 선을 이룰 수 있다는 착각이 아닐까? 우리는 여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됨을 안다. 우리가 소유한 물건이 오히려 우리를 속박하는 기분을 느낀다. 내가 산 아끼는 셔츠를 입고 나갈 때 더러운게 뭍지 않도록 노심초사해서, 순간의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 한 경험들이 있다. 내 물건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만큼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슬픔 또한 작지 않다.

돈도 마찬가지다. 돈 관리는 내 돈과 남의 돈을 구분함에서 시작해야 한다. 주식으로 들어온 현금과 자기 자본을 나누는 것처럼 기업들도 내 돈과 남의 돈을 구별하여 회계한다. 내가 번 돈 1천 만 원과 남이 준 1천 만 원은 절대 같은 신분을 가질 수 없다. 남이 빌려준 것이 아니라 그냥 준 돈이라도 말이다. 내 돈을 잃으면 마음이 제일 아프고, 남의 돈을 잃으면 마음은 조금 덜 아프고 그대신 걱정이 커진다. 내 돈이면 어디로 새는지 눈에 불을 키고 볼 것이며, 남의 돈이 어디로 새는지는 그리 관심이 없다, 그게 내 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본능적으로 내 돈은 아껴야 하고, 남의 돈은 그리 아깝지 않게 드는게 보통이다.

돈보다 귀한 것이 시간이다. 시간은 거의 대부분 내 것이다. 내가 회사와 계약한 근로계약서의 근무 시간도 마찬가지다. 해당 시간은 회사 것이라기보다, 내가 회사 일을 하는 시간일 뿐, 내 시간이다. 세상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한정된 유일한 자원인 시간이야말로 내가 100%를 소유한 것이다.소유의 심리를 오늘 다시 한 번 환기한다. 자고로 내가 소유한 것이라면 나의 최대의 관심을 받아야 하며, 그것이 최대한의 선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나에게 책임이 주어진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주체적으로 그것을 관심을 가지고 가꾸고, 고치고, 개발하고, 키워야한다. 내가 소유한 시간은 최대의 레버리지 자산이다. 그 다음이 돈이다.

스티븐 슈워츠먼의 『투자의 모험』 을 읽고

<관찰>

갓 백일을 넘긴 아기를 키우고 있다. 아기에게는 우리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아기가 아프지 않고 무럭무럭 클 수 있게 돌보는 것이 부모의 의무다. 육아에 익숙해질 틈을 주지 않는다. 어느 며칠은 잘 자다가도 어느 날부터는 마녀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렇게 수면 부족의 상태에서도 아이는 커간다.

육아를 한 마디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끊임없이 바라봐주는 시간이다. 부모의 시선은 아이의 모든 움직임을 따라다닌다.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똥 싸는 시간까지 기록하면서 아기의 모든 움직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아이의 성장에 관심을 가질수록 이 아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투자의 기회를 찾는 것도 관찰에서 시작한다. 블랙스톤의 창립자이자 초대 회장인 스티븐 슈워츠먼은 패턴을 읽는 것에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흐름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 흐름 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보는 것이다. 공개된 자료를 읽고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보를 보충한다. 기회를 찾는다는 행동은 마치 검정 드레스에 묻어 있는 하얀색 보풀을 찾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사람은 검정 드레스만 볼 때, 어떻게 저 보풀이 저기에 붙었을까 하고 묻는 관심 어린 관찰이다.

<투자의 시선>

즉 큰 흐름을 보면 맞지 않는, 혹은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들을 찾아내는 눈이 투자의 핵심이다. 흐름 속에서 이런 사건을 2개만 찾아내면 이 두 개를 잇는 직선을 그을 수 있다. 그 선이 이끄는 방향은 새로운 패턴 그 자체가 된다. 이 새로운 패턴을 집중해서 관찰하고 분석한다. 또는, 정설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에 역행하는 일들이 일어나는지 관찰한다. 사람들의 말을 듣기보다 데이터 속에서 행동을 찾아낸다.

이것이 스티븐이 말하는 패턴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방법이다. 다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미지의 영역에 발을 담가야 한다. 세상의 절대다수는 지금 자기 상황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굳이 그 기회를 알게 되도 탐색하지 않는다고 스티븐은 말한다. 이 지점에서 이미 승리의 확률이 갈린다.

<거대한 흐름>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을 하나 꼽자면, 저출산과 고령화일 것이다. 절대빈곤 국가부터 선진국까지 출생률과 출산율이 모두 하락하는 현상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점진적으로 하락하든 우리나라처럼 급격하게 추락하든, 사회는 조금씩 늙어가고 아이는 덜 태어난다는 것이 정설이다. 굳이 생명의 순환적 이치를 따지자면, 하나의 그룹 개체는 젊은이가 늙은이를 대체함으로써 존속한다. 가문도 마찬가지고 부족도 마찬가지고 회사도 마찬가지고 국가도 마찬가지다. 모든 문명과 생명은 이와 비슷한 주기를 겪는다.

우리나라의 문제로 한정해 본다. 90년대생이 본격적으로 결혼하고 출산하는 지금의 인구 관성이 끝나면 인구 감소 충격이 찾아온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정설이다. 이때 자연적 순환이 끊기는 사례가 많이 발생할 것이다. 한국의 경제를 이끌었던 중소기업의 30% 이상이 은퇴 연령대인 베이비부머 세대다. 이들은 이제 가업을 승계하거나 기업을 매각하거나 사업을 정리해야 하는 선택지를 가진다.

한국은 일본보다 저렴한 노동력으로 일본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퀄리티를 내며 가성비 위주의 수출 전략을 가져왔다. 패스트팔로워 방식이라고 불렸던 성장 패러다임은 2000년도 초반까지 통했다. 디스플레이, 화학, 철강 등 국가가 주도해 온 수출용 산업 중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갔고, 저부가 가치의 제조 시설은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다. 또, 원청사와 수백개의 하청기업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산업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흐름 속 두 가지 포인트>

첫 번째 포인트는 노동자 권리다. 경쟁사를 빠르게 따라잡는 전략은 노동력을 늘려서 가능했다. 노동자 수를 늘려서 밤낮 교대하면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 생산성은 선형적으로 증가한다. 다만 문제는 지금까지 이 산술급수적인 생산성이 사람을 갈아 넣음으로써 가능했다는 것이다. 까라면 까는 결과 중심의 문화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만들어놓고도 지켜지지 않았다. 1970년 11월 13일에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고 절규하며 분신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서 노동자 권리 신장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보라. 아직도 빵 공장에서 사람이 기계에 끼어 사망하고 공사 현장에서 안전 미비로 사망 사고 소식이 끊기지 않는다. 대부분이 인재로 인한 예방 가능한 사고들이다. 대한민국 국민 한 명의 목숨이 어떻게 인식되는지 알 수 있다.

소년공 출신의 대통령은 취임 이후부터 이런 노동자 사망 사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사고를 낸 기업의 총수들을 불러서 잘못을 인정하도록 만들고 있다. 얼마 전에는 총리가 한국의 자살률을 낮추겠다는 미션을 선포했다. 국민 한 명 한 명의 목숨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와 인식에 대한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이제 기업이라는 거대 집단보다 국민 개인을 중시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정치 어젠다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노란봉투법과 상법개정안 등 악법도 있다. 개선의 여지가 많다. 

문제는 개선된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를 업무 환경에 반영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표는 과거 성장 공식에 익숙한 세대이며 인건비는 대표적인 고정비이기 때문이다. 인적자원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중소기업이 얼마나 될까. 중소기업 사장이라면 인력(소프트파워)에 투자할까, 혹은 기계(하드파워)에 투자할까. 혹은, 앞으로 맨파워의 정의가 사람 대신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체된다면? 노동의 한계 생산 개념이 아예 새롭게 정의된다면 지금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것이 내가 보는 1번 포인트다.

두 번째 포인트는 한민족이라는 지적 재산(정체성)이다. 백의민족이라고 불릴 만큼 자부심이 강한 우리 민족은 인구 충격 이후 어떻게 적응하게 될까. 한국은 문화 강국이다. 88올림픽의 굴렁쇠 소년을 기획한 이어령 선생님은 ‘문화가 밥’이라고 하셨다. 작은 반도 국가가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세계 속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내는 것도 문화의 힘이 한몫했다. 융성한 문화는 심지어 적국으로부터도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법이다. 문화는 정확한 형체는 없지만 어디서나 존재할 수 있다.

음악, 영화, 음식, 스포츠 카테고리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1인당 생산성은 어마어마하다. 모두 콘텐츠 산업이기 때문이다. 원작자가 있으면 수십, 수백명의 각색자들이 생기고 수만 명의 소비자에게 유통된다. 손흥민, 스트레이키즈, BTS, 런닝맨 모두 K-IP다. 이 모두 한국적인 무언가를 대표한다.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케이스가 매우 중요한 기점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케데헌은 케이팝과 케이푸드, 케이 감성으로 완성된 외국인의 작품이다. 감독은 한국계 캐나다인이고, 제작사는 소니 픽쳐스고, 배급은 넷플릭스가 맡은 K-콘텐츠다. 즉 제작진과 투자자는 대부분 글로벌 인력과 자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회사들도 참여했지만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주도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한 케이스가 될 것 같다. 즉, K 콘텐츠라고 한국인들이 독점하지 않는 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글로벌 공급망은 지금보다 더 촘촘해지고 빨라질 것이다. 이미 소비자들은 대부분의 럭셔리 브랜드 제품이 중국에서 생산되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폰은 made in China, designed by California이다. 그만큼 앞으로 어디서 생산되었는지가 중요할까? 이미 세계가 시장이고 대량 생산의 표준은 중국이 만들고 있다. 그 말은 Made in China가 높은 퀄리티를 보장한다는 의미가 되었다는 것일까? 혹은, 그런데도 브랜드의 태생이 이탈리아나 독일이라는 것이 소비에 더 결정적인 조건일까? 이제는 어디에서 만드느냐보다 누가 만드느냐가 중요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음식점에서 먹는 팟타이는 (재료와 레시피만 같다면) 현지와 거의 비슷한 맛을 낼 것이다. LA 코리아타운에서 먹는 순두부찌개도 한국에서만큼 맛있다. 원산지 국가가 존재하는 한 그것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는 누가 만드느냐가 반드시 그 IP의 순수성(오리지널리티)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다. 한국에서 태국의 맛을 느끼고 미국에서 한국의 맛을 느끼는 것이다.

앞으로 K-콘텐츠는 ‘한국인의 의식주 문화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 상품’으로 취급해야 한다. 한국인이 제일 맛있게 김치찌개를 만드는 시대가 아니다. 단일민족 고집을 피우면 한국은 더더욱 문화적 갈라파고스가 되어 산업의 파이를 키울 수 없다. 다른 나라 출신의 사람들이 편하게 K 콘텐츠를 접해서 카피하고 리믹스하도록 장려해야 해외 자본이 들어올 수 있다.

<리스크>

내 예측이 정확하게 빗나가려면 세상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까? 

수명 연장 기술로 인해 생산 활동 인구 연령이 20살부터 70살까지 늘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더 오래 일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노동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노동 가치가 떨어진다. 그럼 로봇과 AI를 대체할 유인이 그리 크지 않게 된다. 근데 더 오래 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인간은 성취감을 원하지, 노동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소득 수준을 충족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굳이 노동하지 않을 것이다.

혹은, 한 로봇이 100가지가 넘는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어 전 세계 10%의 공정 로봇이 90% 생산량을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소수의 기업이 생산을 독점하는 것은 있음 직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이 직접 원하는 것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생산의 독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국가가 자기 문화가 최고이고 민족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를 채택하여 국가 교류가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K 콘텐츠의 유통에도 제약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인구 감소로 젊은 한국인이 점점 없어지니 새롭고 K 콘텐츠를 생산할 원작자들도 줄어들게 되어 산업의 기초가 약해질 수 있다. 파리지앵이 반드시 파리에 사는 프랑스 민족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앞으로 한국인은 꼭 한민족이 아닐 수 있다. 즉, 지금의 한국인 원작자의 의미는 바뀔 수 있다.

<가장 나다운 투자로서의 모습>

[투자의 모험]을 읽고 나니, 나는 어떤 유형의 투자자이자 사업가일지 생각해 보았다. 투자의 제1원칙은 돈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나의 기질과 성향은 돈을 잃지 않는 결정을 하기에 최적화되도록 훈련되었는지 자문해 본다. 또한, 내가 세운 결정을 흔들리지 않게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인지, 다수의 의견을 꼭 들어야 하는 사람인지 다시금 돌아본다.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돈을 잃게 될 상황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보수적으로 접근했을 때 최소 1%의 이익을 볼 수 있다고 결론 낼 수 있을 때, 그 확률이 51%가 넘는다면 추진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한 투자의 세계에는 적정 가격이 있는데 이 적정 가격은 사람들이 합의한 어떤 약속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즉, 투자는 사람 간의 거래다. 나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이 일을 앞으로 30년 동안 해야 한다면 나는 때때로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할 수 있을까. 나는 인사가 만사라고 믿는 사람이다. 내가 만약 투자를 업으로 하는 길을 걷게 된다면, 내가 사람을 보는 안목과 대인 관계 능력이 가장 큰 무기일 것이다. 나의 약한 점을 보완해 주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를 찾아 함께 하면 된다. 하나 더 꼽자면, 계속해서 의심하는 나의 성향이 사람의 말보다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듣다 보면 남들보다 더 나은 투자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fin.

동양 물리학 자습

70일된 내 아들의 눈동자만큼 빛나는 것이 없다. 이 눈동자는 세상의 모든 빛을 반사할듯 투명하다. 갓난 아기는 시력이 거의 없다. 얼굴 바로 앞 형체만 조금 알아보고 밝고 어두움 정도만 구분한다. 2개월이 되면 망막에서 색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지만 두세살은 되어야 어른이 보는것 같이 세상을 보게 된다. 어린이들이 보는 세상은 얼마나 고해상도일까?

<세상은 먹색>

동양의 현자들은 참 현명했다. 흑백 사상을 통해 세상만사를 설명하는 관점을 만들었다. 동양의 화가들은 먹 하나로 수백개의 음영을 표현하며 사물, 원근, 감정선을 그렸다. 한 폭의 풍경화에 너비와 깊이가 있다. 내 아들은 크면서 컬러풀한 세상을 즐길 것이다. 반면에 나는 먹색이야말로 이 세상의 진정한 컬러라고 생각할 것이다. 탁하다는 말이 아니다, 층층으로 겹겹이라는 말이다. 세상이 반사하는 음양의 깊이에서 내 눈은 반짝이고 입은 무거워진다.

<It’s very personal>

속담에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다. 상충하는 두 속담이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는척하지 말고, 속단하지 말고, 계속해서 진실을 추구하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사적으로.

‘추구(追求)’ 의 뜻은 ‘목적을 이룰 때까지 뒤좇아 구한다’다. 목적을 이룰 때까지 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잠깐은 멈춰 쉴 수 있지만 그만둘 수는 없다는 것. 하지만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중도에 그만두었는가. 러닝앱에서 Start 버튼을 눌렀다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Stop을 누를 수 없는 것처럼,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순 있어도 중간에서 영영 멈출 수 없다. 일단 출발했으면 결국 도착선을 넘어야한다. 안톤 체호프의 권총이다.

<Chain reaction>

하루의 8할은 연쇄적인 반응으로 이루어져있다. 잠에서 깨면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나가는 것처럼, A사건 다음에는 반드시 A-1, 아니면 B라는 행동으로 이어지며 바로 직전의 액션에 종속된다. 하루를 자주적이고 독자적으로 보낸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어떤 ‘근본 행동’에 의한 연쇄 반응들로 하루가 간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만큼 최초의 사건 혹은 액션이 중요한데, 그 행위에 반응하는 연쇄 활동들은 과장을 좀 더 보태면 B->C->D… 반자동으로 일어난다. 모든 연쇄 반응을 통제할 수는 없다. 하루를 통채로 통제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특정 연쇄 반응들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통제 밖의 사건들에 반응하다가 끝이 나는게 하루다.

<에너지, 기>

그래서 변화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변화하려면 반복이 필요한데, 반복은 비슷한 연쇄 반응들의 누적이기 때문이다. 누적시키는 것은 집중을 요하며, 집중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자력 에너지어야 한다. 세상과 내 몸 모두 에너지로 구성되어있다. 인생은 운칠기삼이라고, 운(luck)은 사실 세상이 가진 에너지고, 기(energy)는 내가 가진 에너지다. 내가 가진 에너지로 세상 속 에너지들을 관통하기도, 피해가기도 하며 살아간다. 에너지들이 기가 막히게 조화되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가변적이고 휘발될 지식 조각들대신 나만의 에네르기를 키우고 훈련시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내 기운을 기운차게 뻗어내는 것이 기세다. 하기로 한 것을 해내는 힘,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는 힘.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함>

지난 몇달간 내 정신을 어지럽히고 마음을 힘들게 했던 고민이 있었다. 때론 스스로 내린 선택으로 인해 스스로 불행해진다. 왜 나는 이렇게 힘은 힘대로 들면서 불안하고 슬플까 생각해보니, 항상 바깥에서 최적의 조건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항상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길이 열리길 초조하게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 순간은 있을 수 있어도 절대 오래갈 수 없음을 인정할 수 있었던 방법은 의외로 쉬웠는데, 그냥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헛된 기대를 접었기 때문이다.

힘이 드는 이유는 내가 순응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나의 조건과 환경에 대한 내면의 불평이 들리지 않도록 철저히 불만의 싹을 밟자.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은 나약한 소리기 때문이다. 어차피 쉬운것은 없지 않은가. 하루가 쉬워선 안된다. 하루가 쉬이 흘러가게 놔두어선 안된다. 하루를 지나치듯 보내서도 안된다. 익숙한 것들이 만만해지도록 두지말자.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저무는 저 해를 보고 등골이 서늘해지도록 하자. 내가 선택한 고통이자 축복이다. 불평하지 않는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