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패션과 사교육

나에게 요즘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 대답하겠다. 뜬금없이 왜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굳이 어려운 길을 가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없는게 바로 우리 삶이다. 삶의 난이도를 낮게 맞춘다면 기분 내키는대로, 바람 부는대로 살아도 된다. 하지만 계획이 없다면 상황의 노예가 될 뿐이다. 딱 한 번 주어진 삶이라면 최대한 높은 파도를 타보기로 마음 먹어보는 것이 지금 내가 가져야 할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All of my kindness is taken for weakness” 라는 어느 가사처럼, 세상이 내 친절함을 이용하려 들지라도 흔쾌히 잃으려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남의 허물을 보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분위기를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우선 용서해줄 수 있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먼저 자기를 낮출 수 있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책임을 지려는 사람, 부채의식을 갖고 염치를 가진 사람도 착한 사람이다. 남이 나에게 착하다는 말은 별 의미를 가질 수 없고, 오직 내가 내 안의 야생 짐승을 다스리면서 발현될 뿐이다.

착한 비즈니스

어떤 사업을 착한 사업이라 할 수 있을까? 사용자가 가진 가장 큰 문제와 걱정을 덜어줄 사업은 착한 사업이라 할 수 있겠다. 즉 소비자와 효용을 누리는 자가 같은 경우다. 일할 곳 구하는 걱정을 덜게 해준 공유오피스는 착한 사업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 숙박 옵션을 넓혀준 에어비엔비는 착한 사업 모델이다. 교육의 민주화를 이끈 온라인 사교육도 그렇다.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님이 그러셨다, 우리 나라의 사교육은 인구가 증가하는 경제 고도성장기였기에 이렇게 클 수 있는 산업이었다고. 베이비부머 세대가 자식 세대에게 계층 사다리를 오를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사업이었다고. 다만 시대는 변했고, 작은 땅 덩어리 안에서 서로 더 갖겠다는 부모들의 야욕이 초경쟁 분위기를 만들었다. 부모들이 경험한 성공 방정식을 양육관에 그대로 접목한 덕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공교육이라는 기초자산에 파생된 사교육이 공교육을 흔드는 웩더독 현상은 뉴노멀이 된지 오래다. 그럼 지금의 온라인 사교육은 선한 비즈니스일까? 정답이 있는 교과목 문제들을 가지고도 이렇게 많은 컨텐츠가 있는게 정상적인 교육업일까? 요즘 중고딩들이 많이 쓰는 말처럼 이건 기괴하다. 돈을 쓰는 사람과 효용을 느끼는 사람이 다르거나 아예 없는 산업이 되었달까.

손 안 대고 코를 풀어주는 사업들은 많지만 사교육업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다, 아니 포함될 수 없다. 일타강사가 아무리 떠먹여준다 해도 공부와 사색, 그리고 시험은 내가 직접 해야하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공부 머리는 따로 있고 유전 영향이 크다고 손주은 회장님은 말했다. 나보다 조금 더 많이 아는 사람에게 의존하려는 이 연약한 사회를 만든 범인중에 사교육이 있다고 나는 지목할 것이다.

노하우를 전수하는 사업은 착한 사업일까? 또 얼마나 커질 수 있는 시장일까? 노하우 사업은 크게 두 가지 핵심 자산에서 시작한다. 하나는 아는 수준,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내가 정량적으로 봐도 그 분야의 최고라면 경제적 해자를 구축한 셈이다. 이것을 쉽게 전수하는 시스템까지 있다면 둘째 경쟁력이다.

모든 핵심 노하우에는 3가지의 대표 변수가 있는데, 위치, 시점, 그리고 리스크다. 쉽게 말해, 내가 X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Y라는 특정한 때에 Z라는 나만이 할 수 있었던 리스크 테이킹(레버리지)으로 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전수하는 이 지식을 써먹을 기회가 다시 온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이 전제라면 누구나 이 노하우를 복제해서 비슷한 수준의 결과를 낼 수 있어야하고, 또 내년, 내후년에도 이 노하우를 들을 가치가 있을 정도로 외부 상황이 예측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노하우 컨텐츠는 일물일가 법칙이 성립하기 어렵다. 노하우가 만들어진 상황과 사람이 다르기에 품질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시장에서 가격이 책정되는 수요와 공급은 노하우 보유자가 얼마나 유명한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이 노하우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환불과 불만에 대처할 핑계가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걸 이렇게 하지 못 했기 때문에, 혹은 타이밍이 잘 못 되었고 적절한 리스크 테이킹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대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A/S가 거의 불가능한 산업이라는 것이고, 피해자들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비효율적인 시장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하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있지만 그것은 보통 여러 노하우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기본기와 대원칙일 것이다. 그 위에 과거 경험에 기반한 extra+를 얹어 판매하는 것이 대부분의 상품들이다. 기본기와 대원칙은 잘 변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면, 매월 새로 등장하는 사교육 상품들엔 얼마나 많은 R&D가 들어갈까? 그렇지 않다면 노하우 기반의 사교육과 패스트 패션의 다른 점이 있을까?

패스트패션 산업은 새 유행의 스타일을 저렴한 가격으로 빠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유행에 민감하고 계절마다 옷장을 업데이트하는 사람들에게 착한 비즈니스다. 노하우 사교육업은 어떨까? 나의 무기는 과거에 있던 개인적인 성공 경험이고 규칙과 기본기는 거의 불변이라면, 어떻게 구매자들로 하여금 재구매를 일으킬 수 있을까? 무엇을 팔아야 할까? 내 노하우의 모든 것을 담아 질 좋은 교육 상품을 만들수록 단가는 높을 수 있어도 재구매율은 떨어지는게 노하우 사업의 딜레마다. 그래서 일타강사들도 수업중에 수업 내용보다 학생들에게 인생 조언 시간 비중을 늘리는 이유일지 않을까. 이게 교육업의 본질일까?

착한 사람이 되는 것, 선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착한 사업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99명에게 -1이 되고 한 명에게 +101이 되는 사업이 무슨 의미인가. 여기에 또 착한 사업 기회가 있다.

Fin.

어린이들만 사는 사회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세상에 발사되어 포물선을 그리며 반대편 세상으로 사라진다. 태동하는 생명은 생장하여 성숙기를 거쳐 노화한다. 퇴장으로 포물선은 완성된다. 인간뿐 아니라 브랜드, 제품, 도시, 국가 모두 라이프 사이클을 가진다는 점에서 생명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가고 있다거나 성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x린이 세대

지금 우리는 ‘x린이 세대’를 살고 있다. 주식을 갓 시작했다면 주린이, 러닝엔 런린이, 수영엔 수린이, 자전거엔 자린이, 등산엔 등린이. 접두사만 붙이면 어린이가 될 수 있다. 런린이 해시태그는 60만개가 넘고 주린이 해시태그는 30만 개쯤 된다. 등린이, 자린이, 가나다라마바사린이들의 해시태그를 합치면 우리나라 인구 절반쯤 되지 않을까? x린이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많이 생겨났을까? 그들은 언제쯤 어린이 딱지를 뗄 수 있을까?

왜 다 큰 어른들이 미성숙기를 선택하여 남아 있기를 원할까? 초심자의 겸손을 갖기 위해서일까? 혹은 어설픔에 대한 핑계일까? 초보가 만능 벼슬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큰 성인들이 자기를 어린이라 자칭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먼저 어린이들은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해보았다. 호기심이 많아서 생각이 미쳐 갈 새 없이 해보고 보는 아이들. 설령 잘 못 해도 사랑스러운 얼굴로 바라봐줄 수 있는 아이들. 잘하는 것보다 그것을 하려는 태도에 더 많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대상. 조급함 없이 지켜봐줄 수 있고 여린 몸이 심하게 다치지 않게 보호해줘야 하는 약자들이다.

아이들의 특징들을 다 큰 어른들이 원한다고 생각해보면 이상하다(uncanny). 호기심과 적극성, 열심까지는 좋다. 그걸 넘어서 어른들이 스스로 나를 배려해주고 너그러운 눈빛으로 지켜봐달라는 태도는 어딘가 부담스럽다. 어울리지 않는다. 자기의 본업이나 사이드 프로젝트에선 그 누구보다 프로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어떤 면에선 x린이가 되는 것을 취사선택한다. 설명하기 어려워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가짜 초보 운전

우리나라 차도만큼 초보들이 많은 곳도 없을 것이다. “나는 초보입니다. 내 차는 느립니까 알아서 돌아가세요. 나는 뭐가 액셀이고 브레이크인지 헷갈립니다. 그리고 저는 직진만 합니다.” 이런 수동적이고 공격적인 메시지들은 ‘나 분명히 약자라고 했으니까 니네가 알아서 잘 하세요’ 라고 들린다. 각자 교통 법규를 준수하고 양보 운전을 하면 문제가 없는데 왜 이런 메시지들이 팔릴까.

이런 차들이 차도에 많아지면 전체 운전자들의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이기적인 메시지들은 혼란을 불러 일으킬뿐이다. 해외의 범퍼 스티커들은 단순 유머나 자기의 소속, 신념을 담은 메시지가 대다수인데 우리나라는 내 차가 양보 받을 수 있는 표식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나보다. 피해를 보는 것은 진짜 초보 운전자들이다.

살살해~ 사회

언제부터 우리들은 좀 봐 달라는 시선을 주변에 암묵적으로 요구하게 되었을까? 나를 더 유한 잣대로 바라봐달라고 우회적으로 강조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무시 당하기는 싫지만 봐주었으면 하는 심리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왜 합의된 룰이 있음에도 개인적인 어드벤티지를 요구하게 되었을까? 전문가로 살기보다 초보와 어린이로 사는 것이 덜 팍팍한 사회가 된 것일까.

양적으로 너무 빠르게 크던 계획 경제 시절은 국가와 몇 명의 리더들이 주도하는 강력한 드라이브가 있었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추세였고, 이때 더 중요한 것은 방향보다 속도였을 것이다. 문제는 이때 리더들이 외치던 ‘빨리 빨리’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고, 이 과정에서 불평등과 낙오하는 분야가 생겼다는 것이다. 빨리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것이 미덕인 당시대의 담론은 우리 사회를 무자비하게 포식적인 성격을 갖도록 만들었다. 제대로된 성숙기를 누리지 못 한 우리 사회는 수많은 어른 아이들을 낳았다. 이 잡식성의 사회에 먹히지 않으려면 자립할 힘을 가질만큼 강해지거나, 그렇지 못 하면 내가 약자임을 강하게 어필해야하는 사회가 된 것 같다. 둘 다 방식은 다르지만 살아남고 싶은 마음은 갖다.

성숙하지 않은 것이 유리한 사회. 그리고 그 미성숙함을 선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해먹는 사회를 나는 반대한다. 이렇게 해서는 우리 사회가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양보와 배려, 깍두기 역할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 안에서 타인끼리 서로 제공하는 것이다. 어른은 졸업하듯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회와 연결된 독립된 주체이기 때문에 안팎의 책임을 모두 갖겠다는 결심에서 출발함을 알았으면 한다.

이 세상에 귀여운 게 최고인 것은 맞다. 그런데 귀여운 단계는 이미 지났어야 할 어른들이 삶의 시도와 선택에서 어린이들만의 특권을 바라지 않았으면 한다. 언젠가 우리나라에 가짜 어린이들과 가짜 초보운전자들이 줄어들길 희망한다. 그래야 어른 대 어른으로 진정한 대화와 공평한 경쟁을 할 수 있다. 진짜 스포츠맨십이 꽃 필 수 있다. 그래야 패자도 승자만큼의 박수를 받고 응원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스스로에게 이점을 부여하려는 사회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곳곳마다 다시 기울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fin.

Quite Time, Happy Thoughts

육군으로 복무하고 전역한 지 10년이 지났다. 지금은 민방위 2년 차에 내년부터는 민방위 교육도 사이버 교육으로 진행하는 연차가 된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내 21개월 현역 생활을 돌이켜보면 찰나의 순간 같다. 조용하게 나를 웅크리고 있던 시간. 좋았고 나빴던 순간들을 자세히 회상하기엔 이미 뒤섞이고 흐릿해져서, 드문드문 남은 장면들과 그 당시 했었던 생각들로 주석을 남길 수 있을 뿐이다. 살던 것 멈춰놓고 뒤를 돌아 입소하여 눈을 감고 조용히 사색에 잠길 수 있던 시간.

나는 5월 말 군번으로, 운 나쁘게 유격과 혹한기 훈련을 각각 두 번씩 치렀다. 이렇게 큰 훈련은 특수한 상황을 가정하고 전우들과 더 긴밀하게 지내는 시간이다. 선임들, 후임들, 동기들 모두 이 긴 시간을 어떻게든 빨리, 덜 힘들게 보내고자 했다. 나도 그랬다.

지루하고 불편한 훈련 기간 동안 나 몰래 조용히 즐겼던 시간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행군이었다. 행군은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닌 엄연한 기동 훈련이다. 군장, 방독면 주머니, M16 소총을 메고 전술적 목적지까지 빠르게 다다르는 것이다. 내 기억에 행군은 유격과 혹한기 훈련의 가장 마지막에 하는데, 이게 훈련 기간 동안 계속해서 심적으로 압박한다.

혹한기 훈련은 해가 떠 있는 낮에 행군을 시작하고 한여름의 유격 훈련 행군은 야간 행군이다. 저녁을 먹으면 연병장에 집합한다. 중대장의 훈화가 끝나면 군인들이 긴 줄을 이루며 소대장, 분대장들의 인솔하에 걷기 시작한다.

깜깜해진 밤, 인적 없는 시골 도로에는 군인들의 전투화 발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린다. 두꺼비 소리와 부엉이 소리, 그리고 때때로 다 같이 군가를 부른다. 정신을 안 차리면 자면서 걷다가 대열에서 이탈해 옆 논두렁에 빠지거나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몇 번 졸아봐서, 걸으면서 잠들 수도 있는지를 알았다.

휴식할 때 방탄모를 머리 뒤에 대고 누워서 핀 담배 맛이 그립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말없이 피우던 담배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던 그 광경은 잊을 수 없다. 땀 냄새 밴 여름밤 짙은 공기에 나라 지키러 모인 앳된 남자들이 피워 올리는 각자의 생각들.

걸을수록 머릿속이 점점 텅 빈다. 마라톤을 뛰는 지금이야 5킬로, 10킬로 이렇게 거리 감각이 있지만 그때는 멈추라면 멈추고 가라면 가는 것뿐이었다. 일개 병사의 입장에서 행군 자체의 의미는 내가 지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머릿속에 있는 것들이 하나씩 치워지니 어느새 말끔해진다. 이제부터 생각해 내는 것들은 온전히 나의 관심과 집중을 얻을 수 있다. 내 눈앞의 깜깜한 밤 하늘처럼 내 머릿속은 나의 어떤 상념도 펼쳐 보일 수 있는 검은 배경의 도화지가 된다. 그리고 나는 나머지 행군의 시간 동안 나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행복한 미래를 상상한다.

말 그대로 내 모든 아이디어와 생각에 발언의 기회를 준다. 발언이 있고 나면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변으로 생각의 대화는 이어진다. 선두 분대가 보이지 않는 이 행군의 대열처럼, 어디서 시작했는지 까마득해진 생각들로 인해 나는 방향성 없이 미래에 올 듯한 생각들을 한 발 한 발 전진시킬 뿐이다. 난 이렇게 행군하면서 나만의 은밀하고 대담한 생각들과의 거리를 엄청나게 좁혔다.

이때 상상했던 것은 진짜 현실이 되었다. 난 전역하자마자 한 학기 휴학을 결정하고 대전에서 파티팀을 만들었다. 나는 사람을 얻는 일을 했다. 그 후에는 무의식 속에 있던 그다음 계획에 나를 두었다. 그러고는 잊고 살았다.

요즘 이때 기억이 떠오른 건, 생각을 멀리 보내는 기회를 예전만큼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잘되는 방향으로, 되고 싶은 방향으로 생각을 집중해서 반복하다 보면 그 생각은 무의식에 보관되는데, 이 과정을 새삼 다시 하고 싶었나 보다. self fulfilling prophecy(자기 충족적 예언)처럼. 고독한 시간은 시차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있다. 무탈함 속에서 결여를 느끼고 사람들 사이에서 수치심을 느낀다. 다시 선명한 꿈을 꾸기를 원한다. 내가 스무 살 초반에 강렬한 꿈을 꾸었듯, 다시금 그 생생했던 꿈자리를 갖고 싶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