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 선전 견문록 (241030-241106)

나에게 먼나라 이웃나라였던 중국. 항상 와보고 싶었던 광저우를 거쳐 지금은 선전에 와있다.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중국이야말로 내게 진정 이웃나라이자 먼나라였구나. 다니는 곳마다 내 눈길이 멈추지 않은 곳이 없다. 신기로움과 다름, 그리고 부러움이 섞여 있다.

대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것들이 크다. 쇼핑몰, 광장, 공원은 말할 것도 없다. 5천원짜리 점심에 들어간 밥의 양도 많다. 중국인들은 밥심으로 사는구나. 이정도로 밥을 먹으면 일이 고되도 든든하겠다 싶다. 중심가에 기본으로 깔린 8차선 도로도 생경하다. 차 브랜드는 왜이렇게 많은지. 무엇보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정말 많다. 중국인들은 말도 많다. 어딜 가든 많은 인파와 그에 걸맞는 자전거와 개인 전동 스쿠터 사이를 비집고 가다보면 혼이 쏙 빠진다. 내 모습이 딱 도시에 놀러온 시골쥐 모습이다.

좋은 모습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서나 남녀노소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는 모습은 눈살을 찌뿌리게한다. 누구나 다 피니까 5년+ 금연중인 나도 한 대 정도? 유혹이 되었지만, 그보다 담배에 찌든내에 머리가 아프다. 바로 옆에 누가 있든간에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담뱃불을 붙이던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다.

그만큼 여기나라 사람들은 남의 시선 자체를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사람 수 자체가 많아서일까? 자기들 스스로도 ‘one of so many’ 라고 마음 깊숙히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침 출근 모습을 보면 남성이나 여성 모두 화장기 없이 내추럴한 용모가 대부분이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것보다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독특한 조화가 있음에 분명하다. 국가적 통제 속에서 뽐내는 개인주의일까? 자유로움일까? 호텔 TV를 틀어도 전부 중화사상이 깃든 채널뿐이다. 개인에게 줌인(zoom in)했을 땐 서양적인 삶의 모습이 보이지만 사회로 줌아웃하면 ‘전체적으로 계획된’ 모습이랄까.

나도 남편이자 곧 있으면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 시기가 되니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인다. 걱정 없이 노는 것에 몰입하는 아이들, 그 옆에 있는 보호자들,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엄마들. 아이의 아빠는 지금 일을 하고 있겠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를 보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 맞벌이를 하는 자식 부부를 위해 육아를 돕는 모습은 한국과 비슷하다. 자식 사랑, 손주 사랑은 동양 문화권에서 비슷한 모습이다.

젊은 엄마와 아들이 함께 거니는 모습을 보면 우리 가족의 모습을 미리 보는 것 같다. 나는 은근한 조급함을 느낀다. 모자가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아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과 성을 다해 돈을 벌며 집안의 든든한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난 저 둘의 모습에서 아빠를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곳에 있는동안 매일 스스로에게 주문한다. 이곳에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배움의 시간이어야 한다고,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 쓰여야 한다고. sense of urgency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선전의 온화한 공기가 내게 절박할 것 없지 않냐고 속삭이는 것 같다. 하지만 절박함 없이는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무작정 중국에 왔고, 무엇이든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뿐이다.

칸톤 페어를 참가하기 위해 광저우에 온 것은 잘 한 결정이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중국 제조사로부터 제품을 구매할 때 개략적인 규모감을 익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제품의 일반적인 moq는 몇 개이고 단가는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제품 퀄리티는 어느 수준이며 현재 주요 납품 시장은 어디인지 등을 알고서 해당 제품과 판매 시장간의 핏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40개가 넘는 부스를 돌아다니며 중국 제조사가 바이어를 대하는 관계를 알게 되고, 이런 식으로 거래를 트는구나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생각에 생각을 요하는 것이다. 페어에 참가한 중국 제조사들의 제1 목적은 생산물을 최대한 많이 파는 것이다. 제조사는 자기 공장이 생산할 수 있는 최대치의 캐파를 돌릴 때 가장 큰 이익을 얻기 때문에, 많은 바이어들을 만나 많이 판매하는 것이 이득이다. 그렇기에 기본 moq를 높게 설정하고 무엇이든 바이어의 요구 사항을 맞춰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조사 손익구조 = 원자재비 + 생산 설비를 돌리는 고정비 + 변동비 + 제조사 마진 = 도매 가격

내가 만난 제조사들의 업력이 15년 이상이었다. 생산 경험이 많고 벨류 체인이 안정화되어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들이 주로 납품하고 있는 시장과 거래처를 알면 제품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게임의 규모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짐작도 안된다. 나는 칸톤페어가 커도 이렇게 클줄 몰랐다. 중국에 이렇게 많은 제조사들이 있는지도 몰랐고, 중국의 주요 도시마다 특화 카테고리가 있는 것도 와서 알았다. 왜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적어도 공산품에 대해서는. 제품 수준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다. 시장의 수요를 일부 먹을 수 있다면 제품 그대로 소싱해서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을 버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겠구나. 많은 선택지는 결정을 마비시키지만, 나에겐 영감의 원천이었다. A 제조사의 제품 일부와 B 제조사의 제품을 합쳐서 팔아보거나, 한국 거래처가 없는 제조사가 만드는 신제품을 가지고 한국에 빠르게 가져오거나, 혹은, 제조사와 함께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여 샘플을 가지고 한국 유명 유통사와 계약하여 중간 유통을 하는 방법도 있다. 제조사와 솔직한 대화들을 나누다보면 다양한 해결 방법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나에게 이번 칸톤 페어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초심자의 눈에서 바라본 분석이다. 아직 내 시야는 낮고 분별하는 눈은 없지만, 분명 내가 마음을 먹으면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다. 내가 앞으로 여러 실수를 할 것이고, 잃을 것이고, 또 그만큼 얻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처럼 0에서 시작하는 소규모 온라인 브랜드의 경우, 단일 킬러 제품을 만들어 팔아야 한다. 킬러 제품은 시장의 니즈에 맞게 차별화된 제품을 시장에 제안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자원은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상품의 성공율을 높일 수 있는 모든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창의성은 원가 절감 위에서 고민해야 한다.

글이 길어졌다. 궁극적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건, 내가 칸톤페어에 참가해서 중국에 있는 지금, 많은 용기와 영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솟아날 구멍은 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은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빈손으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면 문제와 답은 항상 내 안에 있다. 당장은 이룬 것이 없는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 분명히 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꺼내는 것도 내가 한다. 시간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아군이자 비싼 원재료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civic square에 다시 방문했을 때, 나는 어떤 고민을 가지고 얼마나 성장해있을까?

fin.

제대로 알 것.

“Ask, and it shall be given you. Seek, and you shall find. Knock, and it shall be opened unto you.”

Matthew 7:7-8

1/ 노벨 문학상

한강 작가가 한국인(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신문에 대서특필되며 들뜬 한 주였다. 2016년에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상을 받았지만 단연 노벨 문학상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한강 작가의 문장들이 온지구 독자들에게 비슷하게 높은 수준으로 감화시키고 감동시킨 결과라고 생각한다. 음악에서 그래미 어워드나 영화에서의 오스카, 혹은 아카데미에는 매년 수상작과 수상 아티스트에 대한 잡음이 존재하는데, 노벨상은 그 선정 과정부터 시작하는 절차가 꽤 길고 다층적이다.

원문이 한글로 쓰인 작품이 어떻게 외국인 심사역들의 최종 선택을 받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것은 한 주 동안 나를 따라다닌 중요한 질문이었다. 나는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아직 없기 때문에 더욱 이유가 궁금했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이 된 이분의 글이 어떻게 세계인에게 읽혔을까. 또 최고의 평가를 받았을까.

내가 도달한 결론은, 한강 작가는 자기가 쓴 모든 텍스트를 제대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 알고 있다는 것. 완벽하게 꿰뚫고 있다는 것. 사용한 단어들이 모두 작가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는 것.

직접적인 개념뿐 아니라 파생해서 사용할 수 있는 의미까지 알고, 또 그 상황에서 의미를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단어를 알고 있다면, 그 단어들은 작가의 손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즉, 말하고자 하는 핵심의 주변에서 요란하게 탭댄스를 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도한 목적지로 문장들이 달려갈 수 있다면 어떤 언어로 번역되었든 읽는 이들의 입에서는 거의 똑같은 맛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2/ 흑백요리사

맛 얘기를 하니 장안의 화제인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를 빼먹을 수 없겠지. 맛 크리에이터들이 자기가 조리한 재료들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를 가지고 겨루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용된 재료와 조리한 방식을 듣고 음식을 먹으면 맛이 더 좋아지는 법이다.

시청자들은 조리 과정과 플레이팅 된 음식을 보고 설명을 듣는다. 백종원 안성재 심사위원은 시청자들을 대신해서 미각 평가까지 함으로써 그 요리사의 작품을 함께 평가하는 것이다. 재료가 내 손바닥 안에 있느니 목표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창의성이 나오고,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훌륭한 임기응변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관록이건, 집착이건.

재료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지, 그리고 의도에 맞게 조리가 되었는지, 실제로 음식을 씹었을 때 의도한 맛이 나는지, 이것과 노벨문학상 평가 기준과 무엇이 크게 다를까 싶다. 손질하는 것이 음식이냐, 텍스트냐, 그리고 내가 그것을 얼마나 제대로 아느냐.

3/ 시각장애 안마사의 비극

며칠 전, 9시 뉴스에서 슬픈 내용을 접했다. 5년 넘게 안마원을 경영해 온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지자체의 부정확한 경고문 때문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고인은 자신의 기본 일상생활을 돕는 활동지원사에게 카드 결제 등 안마원운영 관련 작업을 부탁했는데, 의정부시는 이것을 불법이라고 본 것이다. 이것을 장애인 보조금 부정수급으로 단정 짓고 2억 원을 환수할 수 있다는 경고문을 고인에게 보냈다. 고인은 이 경고문을 듣고 심히 낙담하여 자신이 운영하던 안마원 탕비실 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은, “삶의 희망이 무너졌다”, “열심히 살았는데 범죄자가 됐다”, “너무 허무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그는 안마원을 통해 노모와 두 아들을 뒷바라지한 성실한 가장이었다.

의정부시는 고인에게 ‘활동지원자에게 안마원 일을 부탁한 것은 불법‘이라고 했다. 근데 해당 상대는 시각장애인이다. 누군가 옆에서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식사부터 빨래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손님이 결제를 위해 카드를 내밀면 이게 맞는 카드인지, IC칩 방향이 어디인지를 시각장애인이 알까? 이런 분이 5년 동안 안마원을 열심히 운영했다.

지자체는 너무 나쁜 행동을 했다. 상식도 없었을뿐더러 제대로 알고자 하려는 마음도 없었다. 상황을 확실히 알아보려고 했다면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5년까지 영업할 수 있었을지, 일반인의 도움이 필요할 부분이 무엇일지, 해당 활동지원사가 고인을 얼마나 오래 돕고 있었는지 를 알고자 했다면 불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줄이며

대부분의 경우, 잘 몰라도 우리 생명에 지장은 없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나 대신 알아봐 주거나, 완벽하게 알지 않아도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을 테니까. 모든 인간은 이렇게 산다. 타인을 통해 부족한 지식을 보충하고, 잘못된 정보는 지적받고, 아는 것들은 공유하며.

근데 필요한 수준보다 덜 알고 있는 것은 문제다. 만약 그 분야로 돈을 벌고자 하거나 벌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다. 누군가의 생계가 달린 행정을 처리하는 곳이라면 더 큰 문제다. Dave Chappelle의 말처럼, 누군가의 생계를 뺏는 행위는 그 사람을 죽이는 행위와 같다(‘Taking a man’s livelihood is akin to killing him.’).

잘 알면 명료해지고, 덜 알면 말이 늘어진다. 내 글만 보아도 주절주절 길지 않는가!

제대로 안다는 것은 고민의 축적이다. 치열하게 구하려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훈장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특히 중요해졌다. AI는 생산의 혁명이다. AI는 단순히 창작의 지평을 넓힌 것이 아니라 창작에 드는 비용을 거의 0으로 만든 것이 더 큰 효과이다. 이제 우리는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확실히 알지 않으면 멀리 가기 어려워질 것이다. 인간끼리의 경쟁뿐만이 아니라 기계만도 못 하게 될 수 있다.

fin.

경로를 벗어나지 말 것

9월 중순에 접어들었지만 더위가 좀처럼 식지 않는다. 아직도 열대야로 잠을 설친다. 시원했던 아침 공기는 금방 데워져서, 초여름부터 본격적인 장거리 훈련을 시작한 나에게 특히나 고달프다.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와도 곧 해가 뜨면 금방 더위를 먹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 준비해야 한다.

특히 오늘 아침은 뛰기가 싫었다. 어제 마음을 굳게 먹고 잠들었는데, 참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다. 잠은 깼지만 눈을 감고 핑곗거리를 생각해 본다. 그럴듯한 핑계도 미래의 내가 느낄 죄책감을 대신하지 못한다. 결국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나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어쨌든 나가서 훈련을 소화하였다, 훈련량을 113% 초과 달성하였다.

요즘 스스로에게 되뇌는 주문이 있다, “Stick to the plan, 계획을 벗어나지 말 것”.

계획한 일정에 맞춰 훈련량을 쌓아가다 보면 어떤 날은 선약들 때문에 뛰기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 불가피하게 하루 미룰 때도 있지만 때론 단순히 기분이 내키지 않는 날이다. 사실 이 기분이란 게 한 번 후 하고 불면 날라갈 만큼 가벼운 것인데, 이 기분이 우리의 계획 실행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 글은 내가 세운 계획의 끝까지 도달하려는 마음가짐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자기 훈련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과를 논하기 전에 계획대로 움직였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성취라 생각한다.

첫 번째 이유는, 계획을 고수한다는 것에는 노력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내 목표를 세상에 선언했다고 할지라도, 복잡계로 이루어진 세상의 물결이 갑자기 내가 수영하기 편한 물살로 바뀌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흐름을 역행할 상황들을 마주하겠다는 각오이다. 때론 거슬러 오르는 것을 피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계속 관찰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오늘 해야 할 일에 힘을 모으되, 덜 중요한 일들은 유연하게 조정하는 용기 있는 임기응변. 쉽게 말해 편하게 살지 않겠다는 자세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생각-행동 회로를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목적이 없는 계획은 없다. 목표 의식이 생긴 다음에 계획의 필요성이 생긴다. 뇌에 얻고 싶은 것을 무언가를 입력하면 아주 빠르게 최적의 방법을 찾아준다고 한다. 목적 프롬프트(prompt)를 입력하면 가장 좋은 how를 출력해 주는 최고의 AI 코파일럿이다. 근데 문제는 우리의 뇌가 제시한 how(계획)를 우리 스스로가 속이려든다는 것이다. 경쟁자가 많아서, 포화된 시장이라서,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등 다양한 실질 이유를 들어 우리의 뇌가 제시한 BEST how를 챌린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이 과정도 학습한다. 이러 행동이 반복되면 목표를 세웠고 뇌가 좋은 계획을 안내했음에도, 우리 뇌는 아 얘가 조금 하다가 계획을 폐기할 것이다, 혹은 계획을 자주 수정하겠구나 하고 예측할 것이다. 계획의 완성은 실행인데, 이 완성-실행 알고리즘이 약해지면 점점 실행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그래서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큼 계획을 지키는 일 자체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은 힘들겠지만 이것이 우리의 뇌를 훈련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다, 나에게 더 친절할 것. 친절하다는 것은 필요할 때 있어주는 것이다. 지금 약속을 지킴으로써 미래의 죄책감, 책임감을 덜어주는 친절함이다.

마지막 이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분기 초에 다 같이 모여 세웠던 타임라인이 마감일에 가까워질수록 수정이 잦아지는 것을 목격한다.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처음 계획이 어설펐거나, 설정한 목표에 비해 계획 수준이 낮거나, 회사 밖 상황이 변했거나. 하지만 나는 리더십에서 계획을 충실하게 끌고 갈 의지가 작았던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계획은 계획일 뿐, 언제든지 입맛대로 수정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리더십 아래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 일을 추진할 때 얼마나 힘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후진 의사 결정 문화를 만든다.

그에 반해 어떻게든 주간 계획을 지키려는 조직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처음 계획했던 목표와 가장 근접한 결과물을 얻을 것이고, 그렇게 적응해갈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회사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주거나 아니면 손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반에 A라고 해서 A에 맞춰 일을 추진하던 협력사들에게 ‘A가 B로 변경되었고, 상황상 C로 변경될 수도 있다’ 고 고지한다면, 누가 이 회사와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도모하려 하겠는가.

글을 마무리한다. 계획-실행 메커니즘은 나의 무의식과 관여돼있다. 계획대로 하겠다는 각오. 혹시나, 달리면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거나 몸 상태에 문제가 있는데도 계속 달리라는 말이 아니다. 잠시 멈춰서 스트레칭도 하고 조금 걷다가 다시 뛸 수도 있다. 내가 완주를 계획한 이 코스를 떠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다.

타이슨이 말했다.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19세기 독일 프러시아의 작전 참모였던 Helmuth von Moltke the Elder도 이렇게 말했다, “적을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 계획 따윈 없어진다(No Plan Survives First Contact With the Enemy)”.

이 어록들을 보고 역시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없길 바란다. 오히려 스포츠 경기와 전쟁통에서 저런 유명한 어록이 나오게 된 이유를 나와 같이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이 전쟁 같은 세상에 우린 매일 링 위에 오른다. 종이 울릴 때까지 정신없이 싸운다. 어떤 라운드에서는 상대의 몸에 더 많은 펀치를 꽂아 넣고, 어떤 라운드에서는 간신히 서서 버틴다. 그게 인생이지 않을까! 상대를 KO 시키거나 판정승을 얻을 때까지 계속 링에 올라 코치의 가이드(계획)에 충실하는 것.

누가 그런다, 계획대로 하면 뻔한 결과가 나올 뿐이라고. 그건 남들이 다 하는 계획을 그대로 따라 했을 때다. 내 계획은 절대 뻔할 수 없다고 믿는다. 내 계획과 실행 방법은 유일하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