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세계

인터넷이 유통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면 AI는 창작의 민주화를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내 아이디어를 공짜로 알릴 수 있게 된만큼 AI 덕분에 우리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약 5년 전 코로나 시기, IT업계에 개발자 채용붐이 불었다. 판교역의 모든 출구에는 개발자 구인 광고가 모든 광고판을 차지했을 정도였다. 이때만해도 개발은 아직도 사람이 사람에게 배워야하는 스파르타 코딩 클럽이나 코드스테이츠, 멋쟁이사자처럼, 패스트캠퍼스와 같은 곳에 사람과 돈이 몰렸다. 나도 이때 파이썬을 돈을 주고 수강했다. 지금은 파이썬 한 줄도 쓰지 못 한다. 그대신 Cursor나 Replit은 쓸 줄 안다.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 학습에 달려드는 이유는 생존이 달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취업준비생들에게는 하나의 서브 스킬(skill)을 장착하는 것일 수 있고, 새로운 포지션이나 다른 업종으로의 이직을 통해 더 나은 커리어를 꿈꾸기 위함일 것이다. 단순히 무료하거나 욕심 없는 취미 정도로 코딩을 새로 배우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생성형 AI를 통해 사실상 모든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갓 2년만에 가능해진 것이다. AI는 창작의 민주화를 넘어 학습의 민주화도 이루어냈다. 얼마나 더 아느냐가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알 필요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네가 그것을 알게된 사실이 이제는 더이상 너를 남과 차별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고졸이 서울대 학생보다 전공 분야를 더 많이, 원한다면 더 깊게 알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지식 수준 자체는 더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게다가 인터넷과 AI가 결합하니 특정 정보를 획득하는 것에도 차별을 두기 어려워졌다. 전문성을 통해 감춰왔던, 그리고 전문가들의 네트워크에서만 돌던 정보들은 이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수천분의 1초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트레이딩은 아직 속도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세상 왠만한 정보는 이제 말그대로 공개된 정보다.

그렇다면 정보 자체가 가진 가치는 줄어들었다는 말인가? 정보의 속도나 깊이, 그리고 그 민감한 뉘앙스까지 대중이 접근 가능하게 되었다면, 이제는 그럼 정보와 지식 자체가 경쟁력이었던 것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금까지 지식노동자라고 불리웠던 많은 직군들은 어떻게 될까?

아이디어 자체도 초상향 평준화가 된 지금, 이제부터 경쟁력은 어디서 생기게 될까?

인터넷의 이메일 프로토콜은 편지를 보내는 대상을 이메일을 통해 전세계인으로 확대시켰다. 인터넷 시대에는 작은 아이디어가 전세계의 수요를 캡쳐할 수 있는 지식+경제 유통망을 디지털로 깔아줬다. 인터넷 시대는 다른 말로 글로벌 시대였고, 전세계를 상대로 교역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아이디어와 그것을 잘 퍼뜨리는 마케팅이 중요한 경쟁력이었다.

인터넷 인프라 위에 올라간 AI의 시대에는 자동화가 추가된다. 인터넷으로 초연결된 세계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중 대부분의 일들을 인공 지능에 위임하고 있다. 리서치부터 코딩, 계산 등 귀찮았거나 시간 소모적인 일들이 먼저 자동화될 것이다. 그럼 이때는 자동화를 하는 능력이 경쟁력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생략하거나 간소화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화를 파는 것이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하던 일들의 일부를 자동화하기 시작한다면, 순식간에 많은 일들이 엄청난 속도로 해결되거나 진행될 것이다. 기존에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하게 되면 시간을 포함한 다양한 물리적 제약을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생산성은 급진적으로 좋아질 수 있다. 다만, 이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않든 우리가 이해할 수준을 넘을 정도로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이 조금씩 더 많은 부분을 자동화시킬수록 파장을 일으키듯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든 것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그럼 점점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생길 것이다. 또, 시간이 빠르게 간다고 느낄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더 조급해지고 인내심이 줄어들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자기들이 내려야 하는 결정들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대응할 것이다. 생활에 있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행위들이 계약을 기반으로 자동으로 운영될 것이며, 그만큼 계약에서 자유로운 것들과 관계들이 과거보다 더 큰 가치를 인정받고 수요가 몰릴 것이다.

이것이 내가 가진 전망이다. 여전히 지식은 중요하다. 많이 아는 것이 더이상 의미를 잃었다는 뜻은 안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는 것에서 멈추면 의미가 없다. 그것을 어떻게 이 세상에 응용할 것인지, 접목할 것인지에서 차별점을 만들 것이다. 물론 AI가 훌륭한 ‘HOW’를 알려줄 수 있지만, 특이점이 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그 방법을 어떻게 세상의 흐름에 태울지는 아직 인간의 몫이라 생각한다.

fin.

This game called Life

김태엽, 『사모펀드 투자와 경영의 비밀』 을 읽고.

세상에서 진짜 무서운 사람은 자기가 똑똑한줄 모르고 그냥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여기에 뚝심까지 있다면 그 사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 대해 느꼈던 생각이다. 운이 좋다면 살다가 간혹 이런 부류의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 적당히 잘해야 질투심도 나고 오기도 생기지, 이런 사람이 가진 work ethic을 보면, 마치 죄를 지은 후 성경을 읽을 때 느낄 것 같은 회개심을 느낀다.

그래도 난 이런 사람들이 좋다. 이런 사람들과 가능한 최대한 가까이 붙어 있고 싶다. 그 이유는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그냥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명석한 사람이 한 곳에서 오랫동안 최고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만화의 주인공을 보듯 응원하고 싶어진다.

내가 가진 달란트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끝장을 보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본다. 누구든지 처음 하는 일은 어리숙하다. 남의 떡이 커보일 수 있다.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조급함이 고개를 들면 지금 가고 있는 길에서 눈을 돌려 빨라 보이고 쉬워 보이는 길을 찾게 된다. 내가 지금 발을 디딘 길이 험난할 경우 안전해 보이는 길을 기웃거릴 수 있다. 불안함, 조급함, 일상의 불만족(일상 속 감사함이 줄어듬), 상대적인 비교, 선민 의식, 편리한 현실 타협, 자기 연민 등등. 나열하고 보니 핑계 거리를 무한히 만들 수 있겠다.

그만큼 내 전문 분야를 만들고 그 안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동시에 rewarding한지 다시금 마음으로 받아들여본다. 얼마나 나 스스로를 믿어야 할지, 또 얼마나 스스로에게 기대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루 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뭐라도 되겠다는 배짱과 포부라 생각한다. 배짱과 포부는 다른 말로 하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마치 내가 믿는 신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무신론자에게 설명하기 불가능한 것처럼, 난 그것을 믿기에 굳이 남에게 내 신앙을 인정 받을 필요 없는 것이다. 자기 능력을 마음 깊이 신뢰하는 것 하나로 본능적이고 야성적인 결단들을 내리는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노빠꾸’이고, 내가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료들에게 말하는 ‘못 먹어도 Go’다.

인생 자체가 게임이라면, 나는 얼마의 판돈을 가지고 들어갈 것인가. 잃어도 그만인 돈을 가지고 카지노를 어슬렁 거릴 것인가. 아니면 한 번 사는 인생, 세상 한 곳에 자리 잡고 내 삶을 피워볼 것인가. 내가 지난달 싱가폴에 출장을 갔을 때 일정을 마치고 마리나베이샌즈 카지노에 들른 적이 있다. 내 생전 첫 카지노였는데, 20만 원 정도를 칩으로 환전했다. 내가 블랙잭은 조금 할 줄 알아서 배팅 금액이 가장 낮은 테이블에 앉아 몇 판을 했다. 초심자의 운을 믿고 이 돈으로 2배를 불리는 욕심을 냈다. 나는 블랙잭 자체를 즐기기보다 저 딜러를 이겨야겠다는 욕망에 휩싸였다. 나는 카드를 카운팅하는 것은 커녕 블랙잭 게임의 기본 승리 확률도 모르는 상태로 게임을 했다보니 어찌 보면 모든 것을 운에 맡긴 것과 다름 없었다. 결국 헐레벌떡 70달러를 땄지만, 게임을 즐기지는 못 했던 것 같다.

반대로 나와 함께 간 사람은 나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칩으로 환전해서, 어차피 잃을 돈이니 제대로 배우고 즐기겠다는 태도로 블랙잭을 했다. 한 게임 하고 챗GPT로 자기의 플레이를 복기하고, 잘하는 사람의 어깨 너머로 플레이를 지켜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베팅하는 것을 반복했다. 조금 잃기도 했지만 결국 최신 아이폰 하나 살 정도의 돈을 벌었다. 이것을 보고 느꼈다. 자기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도전하는 것과 카지노에서 베팅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결국 중요한 것은, 이 게임을 최대한 길게 즐길 수 있으면서 자기가 세운 규칙에 맞게 배팅하는 것이었다. 그 마인드, 그 태도, 그 결단력 덕분에 그가 처음 가지고 온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따고 카지노를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원히 멈출 수 없는 고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내 배짱으로 나만의 답을 만들어본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배팅 전략은 무엇인가.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