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te Time, Happy Thoughts

육군으로 복무하고 전역한 지 10년이 지났다. 지금은 민방위 2년 차에 내년부터는 민방위 교육도 사이버 교육으로 진행하는 연차가 된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내 21개월 현역 생활을 돌이켜보면 찰나의 순간 같다. 조용하게 나를 웅크리고 있던 시간. 좋았고 나빴던 순간들을 자세히 회상하기엔 이미 뒤섞이고 흐릿해져서, 드문드문 남은 장면들과 그 당시 했었던 생각들로 주석을 남길 수 있을 뿐이다. 살던 것 멈춰놓고 뒤를 돌아 입소하여 눈을 감고 조용히 사색에 잠길 수 있던 시간.

나는 5월 말 군번으로, 운 나쁘게 유격과 혹한기 훈련을 각각 두 번씩 치렀다. 이렇게 큰 훈련은 특수한 상황을 가정하고 전우들과 더 긴밀하게 지내는 시간이다. 선임들, 후임들, 동기들 모두 이 긴 시간을 어떻게든 빨리, 덜 힘들게 보내고자 했다. 나도 그랬다.

지루하고 불편한 훈련 기간 동안 나 몰래 조용히 즐겼던 시간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행군이었다. 행군은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닌 엄연한 기동 훈련이다. 군장, 방독면 주머니, M16 소총을 메고 전술적 목적지까지 빠르게 다다르는 것이다. 내 기억에 행군은 유격과 혹한기 훈련의 가장 마지막에 하는데, 이게 훈련 기간 동안 계속해서 심적으로 압박한다.

혹한기 훈련은 해가 떠 있는 낮에 행군을 시작하고 한여름의 유격 훈련 행군은 야간 행군이다. 저녁을 먹으면 연병장에 집합한다. 중대장의 훈화가 끝나면 군인들이 긴 줄을 이루며 소대장, 분대장들의 인솔하에 걷기 시작한다.

깜깜해진 밤, 인적 없는 시골 도로에는 군인들의 전투화 발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린다. 두꺼비 소리와 부엉이 소리, 그리고 때때로 다 같이 군가를 부른다. 정신을 안 차리면 자면서 걷다가 대열에서 이탈해 옆 논두렁에 빠지거나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몇 번 졸아봐서, 걸으면서 잠들 수도 있는지를 알았다.

휴식할 때 방탄모를 머리 뒤에 대고 누워서 핀 담배 맛이 그립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말없이 피우던 담배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던 그 광경은 잊을 수 없다. 땀 냄새 밴 여름밤 짙은 공기에 나라 지키러 모인 앳된 남자들이 피워 올리는 각자의 생각들.

걸을수록 머릿속이 점점 텅 빈다. 마라톤을 뛰는 지금이야 5킬로, 10킬로 이렇게 거리 감각이 있지만 그때는 멈추라면 멈추고 가라면 가는 것뿐이었다. 일개 병사의 입장에서 행군 자체의 의미는 내가 지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머릿속에 있는 것들이 하나씩 치워지니 어느새 말끔해진다. 이제부터 생각해 내는 것들은 온전히 나의 관심과 집중을 얻을 수 있다. 내 눈앞의 깜깜한 밤 하늘처럼 내 머릿속은 나의 어떤 상념도 펼쳐 보일 수 있는 검은 배경의 도화지가 된다. 그리고 나는 나머지 행군의 시간 동안 나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행복한 미래를 상상한다.

말 그대로 내 모든 아이디어와 생각에 발언의 기회를 준다. 발언이 있고 나면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변으로 생각의 대화는 이어진다. 선두 분대가 보이지 않는 이 행군의 대열처럼, 어디서 시작했는지 까마득해진 생각들로 인해 나는 방향성 없이 미래에 올 듯한 생각들을 한 발 한 발 전진시킬 뿐이다. 난 이렇게 행군하면서 나만의 은밀하고 대담한 생각들과의 거리를 엄청나게 좁혔다.

이때 상상했던 것은 진짜 현실이 되었다. 난 전역하자마자 한 학기 휴학을 결정하고 대전에서 파티팀을 만들었다. 나는 사람을 얻는 일을 했다. 그 후에는 무의식 속에 있던 그다음 계획에 나를 두었다. 그러고는 잊고 살았다.

요즘 이때 기억이 떠오른 건, 생각을 멀리 보내는 기회를 예전만큼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잘되는 방향으로, 되고 싶은 방향으로 생각을 집중해서 반복하다 보면 그 생각은 무의식에 보관되는데, 이 과정을 새삼 다시 하고 싶었나 보다. self fulfilling prophecy(자기 충족적 예언)처럼. 고독한 시간은 시차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있다. 무탈함 속에서 결여를 느끼고 사람들 사이에서 수치심을 느낀다. 다시 선명한 꿈을 꾸기를 원한다. 내가 스무 살 초반에 강렬한 꿈을 꾸었듯, 다시금 그 생생했던 꿈자리를 갖고 싶다.

fin.

알 수 없음의 아바타

글쓴이: Bruce Wayne Lee

Hi, Yo soy Bruce Wayne Lee. I'm Korean and also go by the name of 李俊雨. Hope you find something interesting here and hope to run into you in the near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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