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3000 and New Blue Sun

“Be a baby at something.”

André3000

200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좋아하는 가수가 새 앨범을 내면 CD를 사거나 아이튠즈에서 음악을 구매해서 들었다. 일주일동안 한 앨범만 들으면 가사도 되새김질하며 가수를 이해할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들리지 않던 작은 악기 소리도 찾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능동적인 자세로 창작자와 공명하며 내가 소유한 그의 음악을 즐겼다. 2010년대로 접어들고 당연하게 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는 우리의 음악 소비욕을 극대화시켰고, 그래서 음악적 소유의 한계도 없이 무한하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이제는 음악을 감상하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활동이 되었고, 뉴스를 보듯 음악을 듣는 수준에 멈춰있다.

지난 주말 Andre3000이 낸 자신의 첫 솔로 앨범 <New Blue Sun>이 힙합 커뮤니티에서 화제다. 힙합계 GOAT(Greatest Of All Time)가 16년만에 낸 앨범이 힙합 앨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록된 10개의 트랙은 Andre가 몇 년간 깊게 빠져 있는 피리 소리로만 채워졌다. 과거 Outkast를 그리워하던 뭇 팬들은 김이 빠지기도, 더러는 화를 내기도 했다.

Outkast는 힙합 역사상 최고의 듀오중 하나고, Andre는 자기만의 독특한 음악적 세계로 다음 아티스트 세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큰 영향력을 가진 그였지만 2006년 Outkast 6집이 정규 앨범이 마지막이었고, 다른 힙합 아티스트의 노래에 게스트로만 참여할뿐이었다. 그러다 그가 세상에 낸 앨범은 힙합 앨범이 아니다. 바람의 앨범이랄까. 전곡 재생을 누른 수많은 이들을 위해 Andre는 첫 곡 제목을 통해 친절하게 말해준다: “I Swear, I Really Wanted To Make A “Rap” Album But This Is Literally The Way The Wind Blew Me This Time”

소비자의 일부 욕망은 생산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경제적 논리와 같은 말이다. 만들어낸 결과물로 하여금 소비자가 그것을 더 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Andre도 아티스트로서 그랬다. Outkast로 활동할 때 발표한 음악들은 탄탄한 시장적 성격을 가졌다. 시장(market)적 성격이란, ‘나는 당신이 내게서 원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라는 원칙에 따라 어떤 상황에서도 탐나는 인물/재화가 되려고 시장에 적응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Andre가 한 인터뷰를 보고 나서 그가 옛날의 시장적 성격에서 멀리 떠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큰 업적을 두고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반대로 과거의 영광이 그를 소유하려는 것을 단호히 거절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Andre는 지금 시간을 살면서 충실히 존재하고 있었다. 왜 이런 앨범을 내기로 결정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Why Anything?”

Andre는 계속 무언가를 시도하지만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고 했다(“I don’t stop trying things… I don’t like when I’m ‘trying’ to do a thing. It doesn’t feel authentic.”). 이것이 존재적 실존주의의 정수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지금 무엇에 흥미를 가지는지를 분명히 인지하면서, 내 입장을 충분히 세우면서도 외부의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Andre는 자유로운 유목민처럼 능동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대중 팬은 약간 반대편 세상에 있는 느낌이다. 우리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스트리밍해서 빠르게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 이젠 창작자인 아티스트까지도 소유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소비자로서의 역설적인 행태는, 아티스트의 진정성을 원하면서 내가 알고 소비하던 대상의 성격이 완전히 변하는 것에 대해선 지체없이 비판한다. 이것은 두려움과 불안의 정서 표출이다.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 가사까지 없다면 이걸 좋았다 나쁘다 판단할 수 없다. Kanye나 Dave Chappelle의 말처럼, 마음에 안 들으면 그냥 다음에 안 들으면 된다.

존재하려는 인간 vs. 소유하려는 인간, 생성하려는 인간 vs. 소비하려는 인간

생성하는 활동과 그 전반의 과정은 존재의 구성 요소이다. 존재는 생성과정(‘becoming’)과 동의어이다. 사람과 같은 유기체는 계속 생성을 겪어야만 존재할 수 있듯, 변화하고 실천하는 삶이 존재의 유일한 방식이다. 왜냐하면 되어가는 과정(‘becoming’)과 행위는 소유될 수 없는 체험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점유하고 소유하려는 마음은 분명한 이기주의다. 나를 위한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하고, 나만의 Andre3000을 가져야만 안심이 되는 마음. 내가 알던 Andre로 남아 비슷한 음악만 계속 내주면 나는 그것을 빠르게 소비해서 ‘나는 Andre 음악을 잘 안다’ 로 자위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목적만 남은 탐욕이다.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에 나를 투영하고, 자연스레 자기 자신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잉여 사회에서 중요한 덕목인 소비는 소유의 한 형태이다. 소비는 날카로운 이중성을 갖는다. 하나는 이미 써버린 것은 빼앗길 염려가 없으므로 일단 불안감을 해소해준다. 그러나 일단 써버린 것이 주는 충족감은 멈췄기 때문에, 새로운 충족감을 얻기 위해 다음에 소비할 대상을 찾지 않으면 나의 실체가 엹어지거나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지위이든, 권력이든, 재물이든, 대부분의 소비 형태는 수동성을 유발시켜, 새것에의 욕구는 내 불안정함가 나로부터의 도피의 다른 모습이다.

무한한 욕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유한한 세계와는 맞지 않다. 계속해서 우상향하는 그래프는 없다. 소유 지향과 이윤 추구의 사회의 결말은 필연적으로 공/허무에서 멈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예전 시절처럼 앞으로 일주일간 <New Blue Sun> 앨범만 디깅할 것이다. 존재하는 나로서 창작자를 소유하려는 마음을 비우고 향유하는 것이다.

fin.

Check out the latest state of his being
알 수 없음의 아바타

글쓴이: Bruce Wayne Lee

Hi, Yo soy Bruce Wayne Lee. I'm Korean and also go by the name of 李俊雨. Hope you find something interesting here and hope to run into you in the near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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