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대한 질문

“Don’t just do it. Everything you do conveys message.”

Mr.Song

송영길 부사장님이 쓴 ‘그냥 하지 말라’ 라는 책을 읽었다. 깊은 맛을 지닌 인사이트와 맛 좋은 스토리 텔링이 만나니 말씀이 쭉쭉 잘 먹히고 소화도 잘 되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메시지라고 했다. 그렇다, 내가 행하는 것들은 모두 나라는 인간의 존재를 빛내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선언하는 나만의 철학이다.

내 삶 전체가 테스트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들을 몰아내고 보니 나만의 풀어야할 문제들이 보따리채로 남아있었다, 제대로 언박싱도 못 해 캐캐 묵은 그런 ‘나의 문제들’. 스스로에게 부끄러워도 숨을 수 있는 외부의 핑계가 사라지니 이제 하루하루가 나와의 진솔한 대화와 봐주는 것 없는 시험의 연속이다. 역설적으로 이 시간들은 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고 내가 용기 있는 사람인지를 비춘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물음은 태어났으면 피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질문이다. 생각보다 내가 가진 것들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밖에서 가져온 관념들을 내가 만든 것인양 수용하고 살았다. 나는 마치 몇 년간 집에 이것저것 잔뜩 두고 살면서 대청소 시작은 엄두도 못내는 사람이었다. ‘이건 할 수 있겠다, 할 수 없겠다’ 하는 작은 생각들도 내가 수긍 하기 전부터 내 몸에 이미 붙어있었다. 생각 없이 수용하는 것들은 나를 가장 하찮은 수준의 나로서, 조용히 무리하지 말고 살자고 무겁게 설득하고 있었다.

나는 러닝을 하면서 한계를 시험한다는 뜻을 몸으로 배운다. 도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거리를 두 발로 넘었을 때. 감히 내 몸에게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 속도로 달리고 있을 때. 지난주에도 고된 훈련을 마쳤지만 더 고된 훈련을 시작하기 위해 Start 버튼을 누르는 나를 볼 때. 이정도면 더 멋있어진 나를 만나기 위한 구실이다, 뛴다는 것이.

나는 포기가 빠른 편이었다. 몸을 사리고 적당히 해야 안전하게 오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뛰다보면 어려운 결정을 하도록 요구하는 시간이 분명하게 찾아온다. 발바닥이 아프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거나 고관절이 굳는 느낌이 들면 ‘무리하지 않는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나를 시험한다. 이럴 때마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감각이 통증인지 피로감인지, 피로감이라면 나는 내 몸에 명령을 내려서 ‘내가 너의 대장이고 지휘자’라는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켜줘야한다.

러닝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는 나의 한계를 넘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이란 잘못한 생각을 버리지 못 했을 것이다. 우리의 한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저 멀리 있다. 중요한 것은 밖에서 받은 영향이 아니라 바로 내가 나의 주인이며 내 인생의 선장이라는 메시지를 내 몸에게, 내 뇌에게 확실하게 강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약하게 만드는 생각들이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 누르려면 어떻게 할까? 힘듦을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 어렵고 불편한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나이키 러닝 헤드 코치 Chris Bennett의 말이다, ‘Be comfortable with the uncomfortable’. 나를 얉보는 연약한 생각들이 넘어오지 못 하게 내가 그 문턱을 조금씩 높이는 것이다.

러닝은 복잡한 운동이지만 동시에 단순하다. 러닝은 위대한 질문들에 내가 직접 대답하도록 요구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이 훈련을 마무리할 것인가. 이 질문은 훈련이 힘들어지기 시작할 때 온다. 그럼 메시지를 전달할 타이밍이다, ‘난 결승선을 뛰어서 넘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아저씨처럼 적어도 끝까지 걷지 않으면 된다.

fin.

알 수 없음의 아바타

글쓴이: Bruce Wayne Lee

Hi, Yo soy Bruce Wayne Lee. I'm Korean and also go by the name of 李俊雨. Hope you find something interesting here and hope to run into you in the near futur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