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gether, risk and chance illuminate the path of awakening.”
Bruce W. Lee
조용히 저물고 있던 해의 모습에 서글픔이 있다. 오늘 할 일을 끝냈는지를 묻고는 나보다 조금 일찍 퇴근길에 오른다. 난 해가 따뜻하게 데워준 공기를 타고 하루 종일 둥둥 표류했을 뿐이지만 이를 고백할 즈음에는 이미 저만치 내려앉아있다.
한낮의 햇빛은 차마 올려다볼 수 없었지만 서쪽 지평선에 가까워진 해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려고 한다. 본연의 짙은 채도를 내기 시작하며 아버지의 눈동자 같이 이제 감히 쳐다볼 수 있게 된다. 석양이 되어버린 해가 나를 안심시키는 것도 잠시, 푸르스름한 황혼이 석양을 조용하게 밀어낸다.
l’heure entre chien et loup, 개와 늑대의 시간. 땅거미가 진 황혼, 그리고 새벽 동이 뜰 무렵을 표현하는 프랑스 표현어다. 최소한의 햇빛이 무언가의 실루엣만 간신히 보여주는 이 시간에는 멀리서 나에게 다가오는 저것이 과연 내게 친근한 개인지, 나를 죽이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다.
황혼과 새벽은 밝음이 매우 줄어든 때지만 깜깜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래서 익숙한 것을 앞에 두고도 저게 내가 잘 알고 있는 그것이 맞는지 긴가민가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명료하게 인지할 수 없는 이 시간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날카롭게 다듬어둔 내 의식(consciousness)이다. 의식만이 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위험을 인지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쉽게 기분이 누그러지는 황혼과 새벽녘에는 우리가 두 눈을 뜨고 근육을 깨워서 다가오는 저것에 대비해야 한다, 그게 무엇이든. 유일한 무기는 나의 의식이다.
기회(chance)와 위험(risk)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 둘은 진정한 본질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여러 문맥을 통해 그것이 기회인지, 위험인지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이 시간이 기회다. 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는 이 어중간한 몇 시간 동안은 낮과 밤엔 허락하지 않던 깊이감 있는 질문과 내면의 용기를 비춘다. 이 개와 늑대의 시간에 내가 뾰족하게 다듬어온 의식을 가지고 깨어있는 이유다.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