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기본기에 충실했다구.”
Bruce W. Lee
탄자니아 넷째 날, 세렝게티 Game Drive 일정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호텔에서 밥을 먹고 차에 올라 세렝게티 보호구역으로 향했다.(Game Drive: 일반적으로 사륜구동의 사파리 투어용 차 안에서 야생 동물들을 관찰하는 투어 상품)
한참 가다가 세렝게티 메인 게이트까지 한 18km 정도 남은 길에서 네이선이 차를 세웠다. 우린 네이선이 용변이 급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키를 돌려도 요란한 끽끽 소리만 낼뿐 소용이 없었다. 갓 정오가 지난 시간이었기에 우린 높은 실외 온도 때문에 차가 퍼졌다고 생각했다.
예상치 못 한 상황에서 우리는 네이선의 얼굴만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이곳은 미국 라스베가스로 가는 15번 국도처럼 쭉 뻗은 도로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곳은 없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어린 마사이족 소년과 그의 개 한 마리가 멈춰 선 우리 차 주변을 어슬렁거릴 뿐이었다(세렝게티는 마사이족 언어로 ‘endless plain’, 끝없이 펼쳐진 평야).
네이선의 덤덤한 표정만으론 차량의 상황을 알기 어려웠다. 본인도 당황한 나머지 얼굴도 굳어버린 것인지, 상황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쿠나마타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그렇다고 곧 해결될 확신의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차 보닛을 열고 엔진을 찬찬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의심해 볼 만한 원인을 찾았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고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7분 정도 지났을까, 뒤에서 트럭 한 대가 반갑게 다가오고 있었다. 굳이 손을 흔들 필요도 없이, 차 앞 뚜껑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는 차를 세웠다. 차에 있던 세 명의 남자가 모두 내려 네이선을 도와주고자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자기들이 도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제 갈 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편에서 세렝게티 투어를 끝내고 오는 사파리 차량이 우리의 두 번째 선한 사마리아인들이었다. 고객들이 타고 있었음에도 두 명의 현지인 가이드는 오랜 시간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다. 자기들의 차로 우리 차를 밀어서 시동이 걸리는지도 시도했지만 헛수고였다. 부품의 결함임이 확실해졌다.
아쉬운 마음을 가지려는 찰나 큰 트럭이 왔다. 트럭 운전사는 화물칸 아래 공구함을 뒤져 전선 꾸러미를 하나 주었다. 이 희망의 끈을 가진 우리는 이것을 사용할 일만 남았고, 그때 두 번째 사파리 차량이 우리 뒤에 차를 세웠다. 세 명의 남자가 내렸는데, 그중 여유 있는 걸음으로 우리에게 걸어오는 한 남자를 보고, ‘아 이 사람이 해결해 주겠구나’는 직감이 왔다.

우리들은 차 보닛 앞에 다시 모였고 네이선이 상황을 브리핑했다. 그 남자는 추가로 몇 가지를 확인한 후, 전선 꾸러미를 사용해 고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 후, 네이선이 시동을 걸어보니 엔진이 움직인다! 연료통에 있는 기름이 실린더실로 뿜어져야 불을 붙여 엔진이 움직이는데, 실린더 안으로 뿜어주는 기능이 고장이 난 것이었다.
차는 고장 난 지 30분 만에 다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다른 2대를 포함해서 우리를 지나간 모든 이들이 차를 멈춰 세우고 우리의 안부를 물었다. 그것은 동료애, 의협심, 측은지심, 공감력, 혹은 영웅심의 한 면이었다. 또 여러 도움의 손길이 닿게 되면 그 자체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그 희망으로 다른 해결 방안을 찾을 힘을 갖게 되고, 다시 하쿠나마타타 정신이 돌아온다.

내가 이날 느낀 것이 또 있다.
바로 위기 상황에서 빛나는 기본기에 대해서다.
우리가 탄 차는 도요타에서 만든 사파리(off-road)용 랜드크루져다. 오프로드 차량은 포장도로가 아닌 곳에서 악천후 상황과 조건을 만나도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시내에서 보이는 차들에 비해 단순하게 만들어졌다고 느껴진다, 그만큼 오프로드 주행에 최적화되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만약 고급 세단을 타고 세렝게티에 갔다면?
심미성(aesthetics)보다 목적(purpose)과 기능(functionality)에 충실하면 위기에 더 강할 수 있다. 사파리 차량은 지금처럼 긴급 상황에 보닛을 열어 직접 수리가 가능하도록 엔진룸이 모두 개방되어 있고 단순하다. 차량 내부도 인포테인먼트도 없이 사파리 투어 운행에 필수인 기능들만 들어있다. 창문 개폐 방식을 포함해 웬만한 기능도 대부분 수동이다.
그래서 이런 기능이 구현하는 방식도 대부분 보수적이고 수동적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기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직하고 단순한 것은 재미는 조금 없을 수 있지만 사용자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믿음이 간다.
당연히 세련된 것이 좋다. 하지만 세련됨 자체로만 관심을 받으면 꾸며야 할 필수 기능, 기능의 성격, 또는 존재의 목적이 조금 뒷전으로 빠져버릴 수 있다. 보이는 것과 즐거운 경험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요즘, 당연히 동작(제공)해야 할 기본 기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것은 문제를 제대로 정의 내렸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기본 기능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기본기가 *탄탄하다* 고 설명할 수 있다. 사파리 차량의 기본기는 잔고장 없이 장거리 오프로드 주행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기는 위기에서 빛이 난다.
사업의 기본기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은 멋진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네이선의 차를 보고 저런 차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시 힘차게 엔진이 움직이는 네이선의 차처럼, 기본에 충실한 것을 말이다.
